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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거실을 청소하는데 돌연 눈부신 빛이 들어왔다. 창가의 유리병에 햇살이 비치면서 둥근 띠가 생겼다. 창가에서 장롱 끝까지 이어진 빛깔은 무지개는 아니라 하되 뜻밖에 무지개를 본 것 같은 설렘이었다. 자연 현상 중에 특별히 아름다운 풍경이었고 그나마 자주 볼 수 없는 것 때문에 얼핏 떠오른 것이다. 비가 오면 화단의 꽃들이 물기를 잔뜩 머금고 햇살이 비치는 것과 동시에 현관 유리 전체가 오색으로 빛나기도 했으나 그친 뒤 보이는 거대한 포물선을 생각하면 아쉬울 때가 많다.

하지만 그래서 무지개에 집착하며 사는 걸 행복으로 여긴다. 한 소년이 무지개를 보았다지. 화들짝 달려가는데 금방 사라졌다. 잡을만하면 사라지고 포기할 때마다 어른거린다. 단념하고 돌아설 때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 버린 것처럼 무지개는 꿈의 상징이었으되 잡지는 못할 거였다. 무지개에 일생을 건 소년은 찾아다니는 과정이 꿈이었음을 모르고 얼마나 실망했을까. 꿈은 꿈이었을 때만 아름다울 뿐 이루어지면 더 이상 꿈은 아니다. 잡을 수도 없는데 잡으려는 것도 그렇지만 애타게 찾아다닌 것과는 달리 잡고 나면 오히려 허탈해지는 게 그 실상이다.

고향의 앞산에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꽤 높은 산인데도 우산을 펼친 것 같은 모습이 제법 장관이었다. 산꼭대기 구름은 더 뽀얗고 바람도 싱그러울 것 같아 산 너머 동네가 환상으로 지나가곤 했는데 막상 올라가 보니 가난한 시골 동네다. 언덕이나 옹달샘 하나 없이 무성한 덤불과 초가집뿐이다. 그나마 둥지같이 예쁘기는커녕 기둥이 패이고 잡초가 어지러웠다. 환상의 나무는 곰삭은 채 밑동이 드러나 있고 가지는 반나마 죽은 채였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졌다. 험준한 산길보다 힘들었던 건 무너진 동경심이었다. 보기보다 다른 세상을 깨우친 거지만 좀 더 자라서는 그게 꿈의 본체라고 생각했다. 나의 꿈이자 무지개였던 풍경은 직접 올라가 보고 실망했지만 며칠 후 다시 바라본 조붓한 길과 아름드리나무는 여전히 고풍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니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어도 괜찮았다. 산을 넘지만 않았어도, 설혹 그렇더라도 가까이 가지만 않았어도 오래도록 신비로웠을 텐데 싶어 아쉬웠으나 꿈이란 그리고 무지개란 가까이 가면 오히려 의미가 식상되는 거였다. 노심초사 잡으려다 끝내는 실망하고 돌아선 소년처럼 나 역시 돌아오면서 쉽게 수중에 들어올 때는 결코 신비로울 게 없는 꿈의 실상을 보았던 것이다.

오늘 아침 무지개도 아닌 무지개에 탄성을 올린 것 역시 자주 보기 힘든 때문이었다. 비가 그치면 앞산 허공에 터널로 걸쳐져 있던 것과는 달리 어쩌다 보일 뿐이고 그게 늘 아쉬웠으나 쉽게 이루어진다면 누가 일곱 빛깔 꿈이라고 오랜 날 품으며 지낼지 모르겠다.

이제부터는 순수한 꿈을 추구하는 날들이고 싶다. 무지개가 물과 빛과 공기가 만드는 예술이라면 내 삶의 무지개는 꿈과 소망의 날줄과 씨줄로 만들어진다. 동동거리며 찾아 헤매다가 지치는 것 아닌 높은 곳에 목적을 두고 살다 보면 그것은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꿈을 갖고 살 동안 윤택해지는 삶의 운치가 소중한 것이지 이루는 데 치중하는 삶의 격을 떨어뜨린다. 혹 놓쳐 버린 꿈이 있을지언정 연연할 것도 아니다. 무지개는 사라져도 여운은 남아 있는 것처럼 애틋한 느낌은 오래도록 남아 비춰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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