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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요즈음에는 듣기 거북한 소리가 많다. 길을 가면서 전화통화를 하는 건 물론 자동차의 경적 소리도 가끔은 거슬린다. 이따금 상가에서 대중가요를 틀어놓기도 한다. 음악이라면 으레 경쾌한 느낌이지만 소리가 크면 나 같은 경우 민감해서 그런지 신경이 쓰인다. 취향이 다른 만큼 좋고 나쁘고를 따질 건 없지만 혹 싫어하는 사람이 들어도 짜증나지 않을 정도의 볼륨이면 좋았을 텐데 싶어 아쉬웠다.

옛날 사람들이 설정해 왔던 듣기 좋은 소리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갓난아기 우는 소리다. 세상 예쁜 것 중 하나라면 아기가 자는 모습이다. 그러니 울고 보채는 소리까지 귀엽게 들린다는 뜻인데 출산율이 낮다 보니 듣기가 힘들어졌다. 경제적으로 키우기 어렵다는 게 아니고 자녀를 갖지 않는 풍조 때문이란다. 아기가 없으면 집안 분위기도 썰렁해지고 적적할 텐데 모를 일이다.

두 번째 듣기 좋은 것은 아이들 글 읽는 소리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것보다 기쁜 게 없다. 가족들은 대견한 마음으로 공부하고 난 뒤 먹을 간식을 장만했을 것이다. 여름이면 장떡을 굽고 겨울이면 수수부꾸미도 부쳐냈겠다. 밤 깊어 고요해지면 장독대와 뜰에 정화수 떠 놓고 급제를 빌기도 했을 테니 낙방을 할지언정 글 읽는 소리는 어기차다.

마지막 세 번째는 다듬이 소리다. 나 어릴 적만 해도 손빨래는 물론 풀을 먹이거나 손질해서 구겨진 곳과 솔기를 펴는 게 엄마들의 일과였다. 특별히 추석이나 설에 일감이 많아지면 둘이서 다듬이를 하는데 타악기 소리와 흡사했다. 밤 마실 나오다가 또드락또드락 소리에 걸음을 멈추곤 했었지. 달 밝은 밤, 창호지 문살 틈으로 얼비칠 때는 한폭 동양화 같다. 소리라고 하면 보통 소음으로만 여기는데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물리지 않는 것처럼 그랬다.

들어가 보지 않아도 쪽진 머리와 댕기머리가 비치면 어머니와 딸인 경우가 많고 둘 다 쪽 진 머리일 때는 대부분 동서지간이었다. 달 밝은 밤이 아니어도 또닥또닥 혹은 또드락 또드락 소리로 둘이서 또는 혼자서 다듬질을 하는지의 여부는 알 수 있다. 혼자일 때도 그렇게 들릴 수 있지만 리듬이 착착 맞으면 숙련된 주부의 솜씨일 테고 박자가 어긋나거나 서투르면 이제 막 살림에 입문한 초보인 경우가 많다.

아닌 밤중에 타악기 연주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은 그 때문이다. 또닥또닥 단조롭게 들릴 때는 다듬질의 초반부였다. 천천히 나가다가 한 사람이 속도를 내면 박자를 맞춰야 하는 까닭에 그때부터 또드락또드락 과격한 리듬으로 바뀐다. 처음과는 달리 힘들다 보면 듣는 사람도 긴장감을 느낄 정도로 빨라진다. 소리만 들어도 분위기가 그려지곤 했으니 실제 음악회보다 훨씬 고풍적이다.

갑자기 딱 맞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날 때는 밤도 어지간히 깊은 후였다. 규칙적이던 지금까지의 소리에 찬물을 끼얹듯 생소하지만 어긋나게 들리는 중에도 일종의 불협화음 같아서 듣기가 편하다. 그걸 신호로 다듬이의 주자들은 비로소 허리를 펴고 바깥바람을 쐬기도 했다. 얼마 후 다시금 시작되는 다듬잇돌 소리는 밤이 깊어도 여전히 들렸다. 그 때는 벌써 소롯이 잠든 상태라 꿈이나 꾸듯 아련히 멀어지던 소리의 향방.

요즈음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낯선 정경이다. 아기들 보채는 소리도 시대적 풍조 때문인지 자주 들을 수 없다. 글 읽는 소리는 학교와 학원 등 옛날과는 다른 여건과 아파트라는 주택 구조상 어설픈 정경일 수밖에 없다. 다듬이소리 또한 세탁기와 다리미에 묻히고 말았다. 나 역시 기계 빨래에 의존하고 다리미를 쓰고 있으니 타박할 건 아니나 기나긴 밤 다듬이질을 하면서 고단한 삶을 잊었던 정서가 잡힐 듯하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다듬이 세대였을까. 지금은 찾기 힘든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가는 마음이 오늘 따라 향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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