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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전시관에서 본 초두루미는 흔한 오지그릇이었다. 구태여 다른 점을 찾는다면 붉은 색을 입힌 것뿐인데, 두루미라는 이름대로 잘쏙하니 들어간 목과 벙긋하게 돌출된 입 부분 때문인지 날렵해 보인다. 오래 전부터 부뚜막에 놓고 쌀 막걸리를 빚어 초눈을 틔워 먹었다는 식초항아리로, 초파리 등의 벌레가 번식하면서 천연 식초가 된다. 주택 구조가 바뀌고 인공 식초가 나오면서 보기가 힘들더니 웰빙 붐을 타고 다시금 등장한 성 싶다. 이전같이 살림도구는 아니고 완상용일 텐데 가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초두루미라고 부른 배경은 똑 빼닮은 목 부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식초를 만드는 한낱 옹기지만 세상 어디를 봐도 그리 놀라운 기능을 가진 항아리도 없거니와 맛깔스럽게 이름 붙인 경우도 흔치 않다. 김치와 된장과 더불어 우리나라 발효식품의 하나인 식초를 담고 있다 하여 오래 사는 새 이름을 넣어 초두루미라고 했겠지만 제조원은 고작 아궁이 근처다. 툭하면 연기가 나고 재티가 날렸을 것이나 행주로 훔쳐내는 등 세심히 보살폈을 정경.

나도 어릴 적 초두루미를 보았다. 대부분 부엌 초입의 가마솥 옆에 붙박이로 있었는데 목 부분이 솔가지로 덮여 있었다. 막무가내 드나들기보다는 얼기설기 덮어 두면서 지나치게 시는 것을 방지하고 불을 때는 만큼 위생적인 면도 고려했을 것이다. 어느 날은 가뭇한 연기 속에서 두루미가 내려앉는 환상이 보였다. 생김은 날렵해도 투박한 오지그릇은 가당치 않으련만 유기물 분해 과정이 발효라면 초두루미 담은 막걸리와 과일이 식초로 바뀌는 것도 훨훨 날아가는 이미지다.

식초를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므로 줄 타는 곡마단 아이들은 의무처럼 먹어야 했다는 얘기를 듣고 잠깐 놀란 기억도 아련하다. 하필 그래서 초두루미였는지. 어릴 적, 곡마단 구경을 가 보면 유달리 가냘픈 소녀가 있었다. 이름도 모른 채 얼굴이 희어서 창백하게 보이던 그 아이를 참 예쁘고 귀엽다고만 했는데 언젠가 곡예를 부리기 위해 곡마단장이 시키는 대로 억지로 먹는다는 말을 들었다. 실제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특유의 약효가 건강 도모 차원을 넘어 돈 버는 상술에 이용된 것 같아 괜히 두려웠다.

그렇게 습관적으로 먹다 보면 나중에는 혀까지 굳어져서 말하기도 힘들어지는 중독현상에 시달린단다. 특유의 발효 과정으로 식초가 되는 거지만 옛 사람들은 왜 하필 식초 만드는 도구를 초두루미라고 하면서 그렇듯 애잔한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인지. 우연히 식초를 먹으면 뼈가 부드러워지는 것을 알고는 전용 도구를 만들어 초두루미라고 했을 것이다. 특별히 발효를 위해 부뚜막에 놓은 만큼 심심파적으로 맛을 보다가 중독이 될 경우를 감안했겠지. 상큼한 맛을 내고 날생선의 살균효과까지 뛰어나되 과용하면 불치의 병까지 이른다는 무언의 암시였는지.

김밥 또는 초밥을 만들 때 식초로 양념하는 것도 살균 효과 때문이다. 14세기 중엽, 흑사병이 창궐하던 유럽에서 사체를 뒤져 귀금속을 훔쳐낸 4인조 도둑의 이야기도 있다. 시체가 널린 곳만을 찾아 절도행각을 벌였다는데, 그러고도 멀쩡히 살아난 것은 시간이 날 때마다 온 몸에 바른 식초 때문이라는 것. 어떻게 효능을 알았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고 뛰어난 약효를 절도행각에 이용한 것도 유감이나 살균력이 더 확실해졌다면 획기적이다.

부뚜막에 초두루미를 비치해 놓고 식초를 만들어 먹은 것도 중풍예방에 좋다는 속설과 어지간했을까. 그게 곧 몸의 근육이 굳어지는 거라면 뼈를 부드럽게 해 주는 식초야말로 타당한 처방이 아닐 수 없다. 고향집에 있던 것은 아득히 멀어졌으나 이따금 가냘프게 생긴 소녀가 떠오르고 그럴 때마다 언제 하루 사러 가야겠다고 벼르는 중이다. 현대식 주방에서는 만들기도 어렵지만 매끈한 목과 봉긋한 부리는 하늘 높이 날아갈 듯 향수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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