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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돌 틈으로 아이비 덩굴이 우거졌습니다. 우리 집과 이웃 집 사이에 담이 쳐져 있고 경계 지점에 사람 하나 간신히 드나들만한 곳인데 난데없는 화초가 올라왔습니다. 너비라야 두어 뼘 남짓에 휴지와 깡통만 굴러다닐 뿐, 이따금 고양이가 블록 담을 타넘어 다니는 곳에서 참기름이나 바른 듯 파랗게 반짝이는 잎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가슴이 다 짠합니다.

맨 처음 나올 때는 쥐가 밟아댔는지 신통치 않았습니다. 빈약한 줄기가 뜯겨 있을 때는 헌데가 난 뒤통수를 보듯 민망했는데 지금은 세 바퀴쯤 똬리 튼 모양새로 어우러졌습니다. 답답하고 울적한 날 보면 더 힘이 났습니다. 그 풀은 나를 위해 더 모질게 자라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전 옥탑에 사는 여자가 창밖으로 화초를 버렸다는데 그 중 한 가닥이 뿌리를 내리면서 감동적인 상황을 연출한 것입니다.

그 간 장독을 오가면서 눈 여겨 보기는 했어도 꽃까지 필 줄은 뜻밖입니다. 잎이야 그늘에서 자라는 식물도 있으니까 가능하겠지만 꽃은 볕이 들어야 합니다. 어둡고 눅눅한 것은 그렇다 쳐도 군데군데 깨진 시멘트 바닥입니다. 비가 오면 동냥젖을 먹듯 목은 축일 수 있을지 몰라도 볕은 들지 않고 쓰레기뿐인데 하필 땡볕이 내리쬐던 날 앙상한 가닥으로 나온 꽃대를 본 것입니다.

솔직히 꽃이라고 하는 게 무색할 만치 창백한 빛깔이었으나 그런 데서라도 뿌리를 박고 꽃까지 피운 걸 보니 아무렇게나 살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자라는 것도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느낌이 묘해집니다. 무너진 담장과 기왓장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경우 악조건이라도 볕은 쬐고 살았습니다. 아무리 나쁜 자리라 해도 응달에 쓰레기뿐인 여기보다는 괜찮습니다. 그걸 보면 최악의 조건을 극복하고 틔운 푸른 잎과 조촐한 꽃은 다시없을 경이로움이었지요.

곰곰 생각해 봐도 그렇게 자라는 식물은 흔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냄새에 질렸을 것이나 그 때문에 어려움을 극복해 온 대견한 마음도 스스로는 있었을 줄 압니다. 흔한 게 꽃이라고는 해도 필 것 같지 않은 속에서 크는 것보다 경건한 모습은 드물 테니까요.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새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강한 영혼이 형성되고 일에 대한 통찰력이 떠오르면서 마침내 성공하게 되는, 여건은 때로 우리를 그렇게 고차원으로 이끄는 과정 아닐는지요. 제가 감동을 받은 것 또한 가당치 않게 뻗어나간 덩굴과 어기차게 핀 꽃이었던 것처럼.

가령 힘들다고 불평하면 볕도 볼 수 없이 자란 그들에게 미안할 밖에요. 추운 겨울이 아니면 봄도 그다지 설레지 않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자랄지는 모르겠지만 밤이면 별 반짝이는 하늘과 쪽반달도 보게 될 걸 생각하면 고물고물 크는 게 자못 어기차군요. 살다 보면 여건에 좌우되기는 하나 때로는 극복하고 보듬을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나약한 사람은 환경에 지배되지만 현명한 자에게는 기회가 됩니다. 어떤 환경에든 스스로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은 돋보입니다. 우리 살 동안 아름다운 꿈을 꾸는 것도 가끔은 배고프고 추울 때라고 하듯 말입니다.

힘들 때는 나를 둘러싼 여건 모두가 불리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먹기 거북한 약이 몸에는 좋은 것처럼 어려움도 잘만 다스리면 최선의 약으로 바뀝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환경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최상의 여건을 찾아냅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는 하나 혹 나쁘게 되는 것은 극복하지 못했을 때의 일입니다.
살다 보니 이상적이고 좋은 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길이 없다고 타박하기 전에 만들면서라도 나아가는 삶을 구축해 본 것입니다. 요즈음같이 더운 폭양에 새파란 아이비 덩굴을 보면서 깨우친 느낌이야말로 영원히 잊지 못할 소망이었다고 확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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