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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엊그제 모임에서 원목 조각품 전시장을 구경했다. 곳곳에 오래 묵은 나무를 베어 만든 장식품이 많은데 그 중 통짜로 다듬은 원목 탁자가 눈에 띄었다. 둥글넓적한 판에 새겨진 나이테가 유리 테이블 속에서 얼마나 고풍스러운지 몰랐다.

밖에 나와서 뜰을 걸었다. 나무토막을 잘라 만든 의자가 곳곳에 늘어서 있다. 특별히 나무의 상징이라고 할 나이테가 돋보인다. 똑같이 둥근 토막에서 나온 무늬였건만 그 많은 나이테가 하나도 같지 않다. 우리들 표정이 다양한 것처럼 자라온 내력도 각자 다른 것일까.

나이테 하면 나무의 연륜이 생각난다. 켜켜로 뻗은 원형의 고리마다 한 점 씨앗에서 발원된 나무의 일생이 펼쳐진다. 떡잎이 나고 가지를 늘려온 과정을 그려 보던 중 나이테 없는 나무가 스쳐갔다. 지난 해 캘리포니아에서 본 야자수가 떠오른 거다.

야자수는 우리나라의 플라타너스처럼 흔한 나무이다. 특징이라면 나이테가 없는 거였다. 일 년 내 덥기만 해서 쑥쑥 잘 크는데 나이테가 없다고· 그늘은 물론 경관도 좋은데 나무에서 나이테를 빼면 뭐가 남을지. 1년만 자라도 나이테가 생기는 나무에 비해 키는 커서 하늘을 찌를 듯 장해도 나이테가 생기지 않으니 묘한 기분이다.

하지만 나이테가 없는 대신 수많은 비늘줄기가 덮여 있고 현지 사람들은 그것을 나이테라고 부른단다. 소나무 역시 비늘로 둘러싸여 있기는 해도 나이테는 별도로 있었다. 단지 소나무의 비늘줄기는 또 쉬 벗겨지는데 겹겹으로 포개진 캘리포니아 야자수의 비늘줄기는 훨씬 두껍고 질긴 까닭에 나이테라고 볼 수밖에 없다.

더욱 놀라운 점은 야자수 종류는 어디서 자라든 마찬가지라는 거다. 파인애플을 먹은 뒤 싹을 잘라 키워 봐도 야자수처럼 두꺼운 껍질뿐이었다. 기후가 맞지 않아 그런지 잘 크지도 않거니와 큰다 해도 환경이 다른 만큼 물결무늬 나이테는 생기지 못했을 게다.

나이테가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할 때 생기는 것은 모두들 알고 있다. 아열대 기후는 그렇다 쳐도 온대지방인 우리나라에서조차 생기지 않는 이유가 뭔지. 무덥고 선선한 차이로 그어지는 나이테를 보면 밖에서 겨울을 나지 않는 그 때문이었을까. 나이테도 없는 나무라고 했지만 촘촘한 비늘 껍질을 보면 버금가는 뭔가는 있었다.

말 그대로 나이를 구분하는 테가 없다 뿐이지 원형의 연륜은 계속 쌓였을 테니까. 자세히 보면 문양도 가지가지였다. 비바람과 태풍에 따라 제각각 새겨질 것이다. 구부러진 자리마다 태풍과 비바람에 시달려 온 곡절이 묻어난다. 우리 살 동안의 나이테 또한 그렇게 형성되어야겠지.

나이테는 생기지 않는 대신 검버섯과 주름만 늘어나기도 한다. 정말 그런 식으로 균형이 맞지 않을 경우 키가 크고 수많은 비늘껍질에 둘러싸인들 나이테 없는 나무와 다를 게 없다. 단순히 폄하하는 말은 아니고 야자수와 파인애플은 또 생태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연륜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원칙적으로 온대지방에서만 생기는 거라면 여건이 바뀔 때는 지금까지 새겨 온 나이테와 격이 달라질 수 있음도 헤아려야겠다.

탁자의 나이테가 볼수록 특이하다. 유리에 덮인 무늬는 흐를 듯 유연한데 떠받치고 있는 나무토막에는 이끼가 슬었다. 톱으로 켜기 전에는 모르겠더니 막상 잘라 낸 단면은 거칠고 부드러운 두 가지 양상이다. 우리도 안팎으로 나이가 있다면 적절한 조화가 필요할 게다. 묘목일 때는 구부러진 데 하나 없이 매끈했던 나무에 비늘껍질이 생기듯 연륜을 쌓는다고 보면 틀림없겠지.

웬만치 새겨진 후 계속해서 자라게 될 나이테가 오늘따라 소중하다. 흔히 보는, 사포로 다듬은 듯 정연한 문양과 이따금 드러나는 거친 무늬에서 특유의 연륜도 생각한다. 투박한 겉껍질과 물결무늬 나이테가 대조적인 것처럼 안팎이 다를 수도 있는 삶의 양면성을 헤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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