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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나물도 신분을 따진다. 양반의 나물 씀바귀가 그 주인공이다. 갓 높이 쓰고 벼슬 때문이 아니라, 맛은 비록 쓰지만 몸에는 좋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특별히 외가가 양반이라야 먹을 수 있다는 나물. 생김과 특징을 보고 이름을 짓는 것은 우리 민족의 습관이고 양반집 외손자라야 된다니 양반 역시 참을성을 따진다.

몹시도 바람 불던 그 날 논틀밭틀 뒤지면서 몇 모숨 캐 왔다. 끓는 물에 데친 후 새콤달콤 무쳤다. 맵싸한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좋은 약이 입에 쓰다면 약효까지도 뛰어난 씀바귀. 아무렴 제철 같지는 않으나 봄도 아닌 겨울에 먹는 느낌이 딴 때 없이 수수롭다. 그런데 양반의 나물이라고? 얼마나 좋은 나물인지 몰라도 그럴듯한 이름에 적절한 표현이다.

지독히도 쓴맛과 양반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특별히 외갓집 문지방이 높아야 한다고 단서를 붙인 속내가 궁금하다. 양반집 규수가 있었으리. 시집이라고 와 보니 의식 범절이며 모두가 친정과는 딴판이다. 밥맛도 없고 유일하게 맛 들인 찬이었을까. 언젠가 아이들이 밥상머리에서 "무슨 나물인데 이렇게 쓴 거야?"라고 투정을 부렸다. 그 엄마 빙그레 웃으며"쓴 나물도 먹어야 돼."라고 했겠지.

자기도 어릴 때는 먹지 않았던 기억을 되살리며 "씀바귀나물은 외가가 양반이라야 먹는다"고 했을 정경이 오붓하다. 내 생각처럼 양반집 딸이었다면 손에 물 한 번 묻히지 않고 살았다. 양반집 또는 몰락한 집안의 며느리로 갔든 친정에서 본 대로라면 참고 견디는 게 양반적 삶인 것은 이미 깨우쳤다. 구차한 살림에 손수 뜯어 무치기도 했겠지. 아이들도 외가에 드나들 동안 규모를 파악하면서 군말 없이 수긍하게 되었을 법하다.

마음씨 고운 시어머니의 덕담인지도 모르겠다. 온실 속 화초마냥 곱게 자란 양갓집 규수가 며느리로 들어 온 것은 좋았으나 분통처럼 곱던 며느리가 애옥살이에 노랑꽃이 피면서 허구한 날 끌탕이었다. 그래도 잘 견디고는 있으니 과분한 며느리라고 애지중지했겠지.

씀바귀라고 알지도 못했을 텐데, 쓴맛 같은 세상을 사는 며느리가 딸처럼 안쓰러웠겠다. 자기는 익숙했지만, 다듬을 때는 곡진한 사연 나물이라 수월치 않다고 생각했을 거다. 양반의 나물이 약간은 거친 땅이라야 잘 자라듯, 예법과 격식을 따지는 양반의 삶도 만만치는 않을 거라고 하면서.

씀바귀는 홀씨로 번식한다. 돌밭이든 언덕이든 바람 부는 대로 떨어져 번식한다. 먹는 것은 외가가 양반인 사람들 몫이되 특유의 맛은 기름진 땅이 아닌 척박한 땅에서 나온다. 당연히 잎은 물론 뿌리까지 티겁지와 검불 치레다. 꼼꼼하게 다듬지 않으면 먹을 때마다 지근거린다.

양반의 나물로 자라는 요건도 되지만 진정한 양반은 덕을 쌓고 인격을 따진다. 알량한 세도를 믿고 치기를 부린다면 자질을 의심해 볼 일이다. 자갈밭도 양반의 터가 된다. 외가가 양반이라야 먹는다고 했던 오래 전의 아낙 또한 세월과 함께 깊은 의미를 깨우쳤을 테니까.

한갓 나물을 놓고 반상의 우열을 따지는 격이나 억세게 자랄 동안 쓴맛이 덜어지면서 양반의 나물로 급상승했다. 겨울 나물로는 냉이와 소루쟁이 등 많은데 쓴맛을 높이 평가했다. 양념을 뿌리고 모양을 내는 웃고명처럼 어려움은 삶의 꾸미개였다.

당장은 쓰지만 틀림없는 영양식이듯 행복이 불행의 밭에서 자란다면 시련도 인생 덕목이고 행복의 시금석으로 바뀐다. 해동이 될 때 입맛을 돋워주던 나물을 나는 또 겨울 보양식이라고 음미하고 있다. 철 적기는 해도 겨울의 초입에서 찍은 한 컷 추억이 참으로 고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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