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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해거름 난데없는 폭우가 쏟아졌다. 갑자기 비를 만나 혼비백산인데 우박까지 떨어진다. 팥알보다 작은 얼음 조각 때문에 이만저만 추운 게 아니다. 꽃샘은 역시 이름값을 한다. 그냥 봄이 오게 둘 수는 없었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이 봄에 웬 난리람·

부랴부랴 돌아와 보니 옷이 흠뻑 젖었다. 아침에 두꺼운 옷을 입고 나서길 잘했다. 엊그제는 쑥을 도리고 미나리를 뜯으면서 그을릴까 봐 걱정했는데 개벽이 일어났다. 봄나들이 할 때는 기초화장을 더 꼼꼼하게 하지만 워낙 된볕이다. 심술이 다래다래한 시어머니가 그래서 딸은 방에 앉혀 놓고 며느리만 봄볕에 내보내는 것이다.

금이야 옥이야 위한답시고 가을볕만 고집하는 어머니 때문에 딸은 봄볕 한 번 제대로 못 쬐고 시집을 갔으리. 가을볕도 나쁘지는 않으나 건강 차원에서는 봄볕도 보약처럼 좋은데 그릇된 모성 때문에 본의 아닌 피해를 받는 자녀도 있을 것이다. 암튼 그리고는 장대비가 쏟아졌으니 묘하다.

열흘 전 비가 내릴 때는 눈발이 흩날렸다. 그래도 꿈쩍을 하지 않으니 하다하다 우박까지 동원했으리. 심술궂은 꽃샘이 봄 속에 겨울을 냅다 퍼붓곤 하지만 약이나 올리듯 내일이면 또 꽃은 피고 새가 울 테니 미운 놈 차 버려야 떡시루에 엎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상륙한 것을 보면 겨울은 가는 판국인데 괜한 으름장이다.

봄이 온 길을 추적해 본다. 곱은 손 불며 입춘의 문턱 지나왔겠지. 숨어서 동정을 살피다가 진눈깨비를 만나고 파란 속잎 보고는 머무르기도 했다. 강물이 풀리고 진달래가 글썽일 동안도 갑자기 추워지면서 줄행랑을 친 적도 많았으리. 전세가 역전되어 꽃샘이 도망친 것과 봄이 쫓던 길이가 일치하면서 점점 더 따스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앙심을 품고 쏟아 부었던 눈이 춘설로 쌓일 줄은 몰랐을 거다.

지금은 온난화 때문에 보기가 힘들지만 푹푹 쌓인 눈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피는 그 자체가 설경이었다. 오늘 내린 우박도 날벼락이지만 내일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꽃은 피고 새가 울 테니 걱정없다. 우리 또한 역경이라는 떡시루에 앉아서 꿈을 펼칠 수 있으면 그 또한 추억이다. 누군가 괴롭힐지언정 웃으면서 약을 올리는 게 지독한 겨울을 몰아내는 봄 카리스마였던 것을.

방해를 해도 깔축없는 봄이나, 한 번 제대로 이기지도 못하면서 붙잡고 늘어지는 꽃샘은 가히 불가항력의 존재다. 배부른 참새는 혹 방앗간을 거저 지나칠지언정 봄 참새방앗간은 절대로 건너뛰지 않는다. 꽃샘과 봄이 천적인 것처럼 푸른 하늘을 만드는 것으로는 태풍만한 게 없고 인격의 완성을 위해서는 시련만한 게 없다는 듯이.

어쨌든 꽃샘추위쯤은 상관도 하지 않는 봄이 정말 장하다. 따스해진 이상에는 그쯤에서 물러나야겠지만 미워하는 방법이 오히려 플러스가 되다니 짐작이나 했을까. 그것을 알면 겨울은 또 꽃샘추위를 동반한 작태는 멈추련만 번번이 집적대는 것 또한 봄을 위해서는 다행이다. 오기라 해도 우리 꽃을 완상하게 되는 것 중, 봄을 눈엣가시로 치부하는 꽃샘의 역할보다 중요한 것은 또 없으려니.

해마다 꽃샘을 대적하는 봄과 오늘을 헤쳐가면서 내일을 꿈꾸는 나 또한 영원한 동창생이다. 망치를 들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이고 낫을 들면 당연히 풀을 벨 거라고 하지만 그런 식으로 봄이 된다. 발목을 걸고넘어지는 동안 시비가 붙고 하루 이틀 연장되기는 했어도 봄은 어디 가지 않는다. 꽃샘추위는 봄 참새 방앗간이었지만 극성을 떠는 것에 비하면 별다른 소득 없이 계절은 항상 봄으로 넘어갔다.

내 인생의 어려움도 이제는 꽃샘쯤으로 치부해야겠다. 둘은 서로 앙숙이지만 계절의 서두를 장식하자니 바늘과 실처럼 갈 수밖에 없다. 꽃샘이 없는 봄은 생각할 수 없듯이, 인생도 천적 같은 운명 때문에 빛난다. 얼마든지 괴롭혀 보라고, 그럴수록 떡시루에 엎어진 봄처럼 눈도 깜짝하지 않을 거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며칠 후에는 민들레니 벚꽃도 왁자하게 피어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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