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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멀리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바람에 시달린 듯 기울어졌으나 올해도 수많은 꽃눈을 달았다. 벌써 몇 해째 그렇게 바람모지에 서서 자란다. '아아치나무'라고 명명했다.

아치는 다리와 수로 등에 설치하는 건축 양식의 하나다. 평지를 달리던 길이 강을 만나고 계곡을 만나면 터널로 이어줘야 하는데 그게 곧 아치형이다. '신의 각도'라고 하듯 13도 휘어진 것 때문에 엄청난 힘을 떠받친다. 원형이 360도라면 미미한 기울기였으나 양쪽에서 만나므로 안전한 형태를 유지한다.

가장 기본적인 아치형은 발바닥 기울기다. 양쪽으로 맞물린 기울기가 온 몸을 떠받친다. 아치형 모습이 아니었으면 오래 걷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무리한 끝에 각도가 틀어져도 문제가 발생한다. 또 다른 아치형은 아래 위 턱 뼈로, 조금만 어긋나도 말이 어눌해지고 밥 먹는 것조차 부자연스럽다.

달걀도 아치형이다. 계란에도 뼈가 있다고 할 만치 잘 깨지지만 세로는 짧고 가로가 긴 라운드형이라 힘이 고르게 전달된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아치형은 또 다리의 받침대고 보통 기둥과 기둥 사이를 아치형으로 연결한다. 다리 위에 철근을 설치해서 모양을 만들 때 쓰는 공법이다. 규모가 작을 때는 잘 쓰이지 않으나 통행 차량이 많을 때는 아치형으로 만든다. 수많은 차량의 무게도 무게려니와 개울이 아닌 강이라면 수압도 높을 테고 그것을 지탱하기 위한 방법이다.

아치에서 발전한 건축양식으로는 돔(dome)이 있다. 아치는 다리와 수로를 연결하고 돔은 천장이 높은 사원이나 공공시설물에 이용된다. 아치는 단순히 평면에 사용된 공법이고 돔은 좀 더 정교한 건축술로 지붕과 천장에 이용되며, 그 건축법이야말로 발바닥 모양을 본뜬 것이다.

오목하게 마주 보는 자리가 곧 아치형이고 아주 적은 면적으로도 능히 떠받친다. 물고기가 유선형으로 생겼기 때문에 헤엄을 잘 치듯 돔과 아치는 안정적이다. 에스키모의 얼음집과 아프리카에서 볼 수 있는 벌집 모양의 집도 아치형이다. 발 모양을 본떴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강풍에도 안전한 것을 보면 현대공법의 정수라 할 게다.

건축이랄 것도 없는 천막과 얼음집에서 나왔으나 낮추면서 둥글어지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었다면 효율적인 건축법이다. 말은 또 13도 각도 아치형이라 해도 급하게 꺾이면 들쭉날쭉 힘이 분산될 텐데 은연 중 구부러지는 부드러움이 막강한 힘의 모태가 되었다.

아치는 향수적 분위기다. 산골이 고향인 나는 봉긋하게 솟아오른 뒷산을 좋아했다. 뾰족한 산도 푸른 하늘과 맞물리다 보면 아치형에 가깝다. 수많은 산줄기가 연결되면서 하늘을 떠받친다는 동화적 발상도 아련해 온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개울도 구부러지면서 흘렀다. 달을 봐도 반달이 되기 전의 반구형 조각달이 좋았다. 가느다란 눈썹달이 좋은 것도 아치의 환상 때문이었다. 강가의 크고 작은 돌섬도 아치형을 닮았다. 끝이 뾰족한 섬도 있지만 둥그스름한 모양이 편하다. 바닷가의 수평선도 가운데가 불룩한 아치형이다. 고향에서 본 둥근 산처럼 수평선 또한 그 모습으로 하늘을 떠받친다. 아무리 봐도 물리지 않는 풍경이다.

사각형은 급하게 꺾이고 원형은 긴장감이 떨어져 지루한 느낌이되 반구형은 둥글고 원만하다. 삶 역시 기복은 있을지언정 여유로운 속내를 아치형 풍경에서 파악한다. 단순히 굽히기보다는 굽힐 동안 형성되는 모나지 않은 기질이야말로 원만한 삶의 버팀으로 남지 않을까.

다시금 나무를 본다. 숙이면서 스스로를 낮춘 까닭에 저리 굵은 나무로 자라지 않았을까. 숙이지 않고 맞서 왔다면 꺾이고 말았다. 꼿꼿하게 자란 것은 재목감으로 적정하나 둥글고 모난 것도 아닌 기울기의 편안함이 오랫동안 삶의 지주로 남을 것 같다. 신이 만든 전설의 각도라는 게 새삼스럽다. 삶의 각도를 점검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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