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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느티나무 그늘에 여남은 명 사람들이 모였다. 나무의자에 앉아 쉬는 노인들이 보이고 고만고만한 아이들은 냇가에서 물장난을 치는 중이다. 가지 틈으로는 산봉우리 같은 뭉게구름과 청옥같은 하늘이 눈부시다. 나무 꼭대기에서는 매미소리까지 한껏 어우러졌다.

사흘째 이어지던 불볕더위가 잠시 수그러지는 듯하다. 요즈음 폭염주의보가 계속 발령 중이다. 누군가는 한창 더울 때 아스팔트길에 삼겹살을 올려놓았더니 익었다는 농담을 풀어놓았다. 터무니없는 말이었으나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찜통더위를 그럴싸하게 표현했다. 8월을 특별히 '타오름달'이라고 했다는 게 실감이 간다.

사정없이 내리쬐는 볕과 무더운 날씨를 보고 그렇게 이름을 지었나 보다. 쨍쨍하니 뜨거운 볕을 보면 가히 그럴 법하지만 그래야 가을이 온다. 6월과 7월이 더위를 향해 치닫는 시기였다면 8월은 쟁여둔 열기를 뿜어내면서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분수령이다.

염소 뿔도 녹일 만한 더위는 살인적이었다. 그러나 타는 듯한 태양이 아니면 푸른 물이 동이로 쏟아지는 숲속의 녹음이 만들어질 수 없다. 풀섶을 지나다 보면 주황빛 산나리와 초롱꽃이 한창이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정갈해지는 것도 그 즈음이다. 이따금 연세 드신 분들이 풀 먹인 적삼을 입고 다니시는 걸 보면 덩달아 상쾌해진다. 특별히 젊은 사람 가운데 성글게 짠 모시와 마직 옷에 풀을 먹여 그린나래처럼 입고 다니는 걸 보면 잠깐이나마 시원한 기분이다.

여름이면 깨끼적삼을 입고 대청마루에서 부채질을 하시던 큰어머니가 생각난다. 큰아버님은 또 대나무로 만든 죽부인을 끼고 주무셨다. 대오리를 사람의 키만치 엮어 만든 원통형 물건으로, 더울 때 끌어안고 자면 대류(對流) 현상 때문에 잠깐 시원해진다.

요즈음 피서법과는 판이한 풍경이다. 더울 때는 인견과 마 등의 천연섬유 옷으로만 바꿔 입어도 한결 시원하다. 그런데도 냉방시설이 흔하다 보니 나부터도 에어컨 아니면 선풍기부터 생각한다. 남들은 폭염에 쩔쩔매는 판인데 무더위 단상이나 쓰는 게 약간은 생뚱맞다 할 것이나 자기 나름 피서법을 고안하는 것도 더위를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이다. 더위를 생각할 짬이 없도록 특별한 비경이나 생각에 몰두하는 것은 어떨까.

엊그제 올 들어 가장 더웠다는 그 날 어스름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난생 처음 희귀한 노을을 보았다. 노을이라고 하면 보통 서쪽 하늘을 중심으로 물든다. 색다른 거라야 얽혀 있는 띠구름이 고작이었으나 그 날은 구름사진에서 본 것처럼 입체감이 나타나 있었다. 넘어가는 해를 중심으로 구름산맥이 울멍줄멍 늘어선 산봉우리와 흡사했다. 이어서 넘어가는 태양을 강물이 끓이는 듯 붉은 강 여울이 참으로 환상적이었는데…….

그런 날 저녁은 또 어찌나 후텁지근한지 몰랐다. 그래도 다 저녁때 바라 본 노을을 생각하면 열대야도 씻은 듯 사라지곤 했다. 노을이 여름에 특히 아름다운 것도 특이한 사실이다. 봄과 가을에도 물론 볼 수 있으나 유달리 찬란했던 노을 속의 꽃구름이야말로 지독한 무더위 끝에 형성되지 않았을까. 밤하늘의 별은 또 얼마나 반짝였던가. 무덥기는 해도 그런 날씨 때문에 하늘이 맑아지면서 노을이니 별이 그렇게 고왔지 싶다.

무더운 날씨는 힘들지만 그런 속에서 삶의 묘리를 깨우치는 것이다. 타오름달 8월에 볼 수 있는 또 다른 경이로움이다. 너무 덥다 보니 뭔가에 집중할 수도 없이 늘어진다. 바람직한 피서법은 곧 더위를 피하는 것이 아닌 극복의 차원이었던 것을.

들판의 곡식도 태풍과 폭염 속에서 익힘을 준비한다. 불볕더위에 너울을 쓰고 있는 들깨를 보니 가을은 그냥 오지 않는 것을 알겠다. 곡식을 키우는 것은 적당한 수분과 햇볕이지만 익힘을 위해서는 타오름달 8월의 불볕더위가 필요했다. 입추도 지났으니 한시름 덜었다. 8월은 즉, 무더위가 최고조에 달하는 때지만 한편으로는 조금씩 수그러드는 시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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