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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어릴 때 나는 해찰꾸러기였다. 공부도 곧잘 했는데 독서에 더 몰두했다. 한 번 책을 잡으면 학교에까지 가져가서 수업시간 틈틈이 읽었다. 주부가 된 지금도 문학에 더 치중하는 편이다. 어릴 적 기질은 끝내 버리지 못했지만 독서에 파묻히면서도 공부에 열중했기에 나쁘지만은 않았다. 문학이니 음악에 집착하는 한편 집안일도 나름 열심히 한다. 해찰은 부려도 적정선은 지킨다는 자부심은 있었다.

그래서인지 해찰이 가끔 친근하다. 그 뜻은, 하던 일을 접고 딴청을 피운다는 뜻이었으나 나쁜 짓만 아니라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다. 어른들의 기호에 맞춰 주지 못할 뿐 유달리 섬세하고 예리한 안목도 그들 특징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재주꾼이 많은데, 한편으로는 은근 또 외로운 사람들이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꾸중만 일삼으니 그럴 수밖에.

해찰꾸러기는 한눈을 파는 기질이되, 달리기만 하는 경주마형 어린이보다는 창조적이다. 그들 부모는 대부분 자녀를 경주마처럼 키우고 싶어 한다. 잘 달리게만 하기 위해서 눈가리개를 씌운 것처럼 부모님의 욕구 충족을 위한 대상일 뿐이다. 그렇게 달리다가 쓰러지기도 하지만 해찰꾸러기의 삶은 여유가 있다. 어릴 때는 말썽쟁이라고 따돌림을 받을지언정 역사를 돌아보면 해찰꾸러기가 꽤 많고 그들 때문에 각박한 세상이 돌아가거나 세기적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엊그제 새벽 3시쯤 되었을까, 별안간 정전이 되었다. 컴퓨터 작업에 열중해 있다가 깜짝 놀랐다. 더듬더듬 초를 찾아낼 동안 전기가 들어왔다. 차단기가 고장 난 것인데, 잠깐 암흑 속을 헤맸던 일이 새삼스럽다. 전기를 발명한 에디슨이야말로 희대의 해찰꾸러기였다. 달걀을 품고 있는 암탉을 보고 헛간에서 똑같이 흉내내는 일 등은 진짜 터무니없는 해찰이지만 그런 성격 덕분에 발명왕이 된 것일 수도 있다.

전쟁터에서 부상자를 치료해 왔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과 오지 마을에서 의술을 펼친 앨버트 슈바이처만 봐도 전형적인 해찰꾸러기 모습이다. 나이팅게일은 간호사 지망생들이 나이팅게일 선서를 다짐하는 백의의 천사가 되었다. 6개의 박사학위를 소장했던 슈바이처 역시 아프리카의 흑인에게 의료봉사를 행한 끝에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세기적 위인으로 남았다.

힘들고 지쳤다면 그 때의 묘약은 해찰이다. 정상적인 것만 고집하는 엘리트에게는 비난받을 일이나, 석가모니도 왕자 수업을 포기하고 해찰부리는 바람에 야단법석(野壇法席)이 났었다. 야외에서 펼치는 그 불법도 석가모니의 해찰에서 비롯된 결과였으니 해찰이라 해도 건전한 일은 괜찮다.

일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큰 뜻을 펼치기 위해서 소중한 것을 버리는 것은 자기희생이다. 감히 그들에게 비할 수는 없지만, 내가 유일하게 해찰을 부린 독서 역시 공부에 마이너스는 되지 않았다. 뒤늦게 파묻힌 문학과 음악도 여가를 즐기는 동안 건전한 날이 될 수 있었다. 필요 이상 집착하면서 다른 일을 등한시할 때는 문제지만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뜻밖의 충전 효과를 낳는다.

바다처럼 넓은 황하 강에도 한 가닥 푸른 물줄기는 있었다. 그로써 천 년을 흘러왔듯이 속 썩이는 해찰꾸러기도 더러는 필요하다. 여기서는 또 황토 물이 아닌 푸른 물을 해찰로 볼 수 있겠다. 정상 코스를 외면하는 해찰꾸러기도 뜻밖에 성공할 수 있고 가족들에게 골치 아픈 해찰도 가끔 용납해 줄만한 배경으로 충분하다.

앞으로도 나의 해찰은 계속될 것이다. 누군가처럼 거창한 일은 아니었어도 긍정적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해찰꾸러기는 물론 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해찰은 즉 어떤 일에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한눈을 파는 등 쓸데없는 짓을 할 때 쓰는 말이다. 그것에 착안해서 만든 나만의 고유어지만, 누구든지 한 가지 해찰을 적절히 대입하면서 꿋꿋이 사는 역할이 될 것으로 믿는다. 그 때 스쳐 갈 자연의 풍광이나 예지보다 삶의 격을 높여줄 것은 달리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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