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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초여름에는 취나물이다. 두릅이나 고사리도 맛있지만 상큼한 맛은 취나물의 특징이라 할 게다. 살짝 데쳐서 깨소금과 간장과 참기름만 넣어 무쳐도 좋고 된장에 싸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풋것은 풋것대로 향기가 좋고, 볕에 말렸다가 푸성귀가 귀한 겨울철에 묵나물로 먹을 때도 탑탑한 맛이 돋보인다.

취나물을 제대로 먹어 본 것은 작년 봄이다. 이웃집에 보리밥을 먹으러 갔더니 취나물을 무쳐놓았다. 식성이 까다로운지 산나물은 먹지 않는데 옆의 친구가 한 숟갈 넣고 비벼놓은 게 그리 맛있었다. 남들이 봄이면 취나물을 뜯으러 간다고 해도 관심이 없었는데 이렇게 맛있는 것을 왜 그 동안 먹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향이 독특했다.

그 때 이후 처음으로 동무와 함께 산나물을 뜯으러 갔다. 5월의 야산은 벌써 푸르러졌다. 드문드문 철쭉과 싸리꽃이며 찔레나무와 연둣빛 신록이 어우러진 풍경이 얼마나 싱그러운지 몰랐다.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귈 때는 바람에 풀꽃내음이 풍겨오기도 했다. 나물도 나물이지만 푸른 숲 골짜기에 반했다.

취나물을 본 것은 산중턱에 이를 때였다. 손바닥만 하게 자란 취나물이 있는가 하면 에돌아진 응달에서는 파랗게 나오는 중이다. 이따금 털이 부숭부숭한 고사리가 눈에 띄기도 했으나 애기 주먹 같은 모습이 좀 더 펴져야 될 테니 뜯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 외에도 별의별 산나물이 다 있었지만 취나물만 알고 있으니 그것만 찾아다녀야 했다.

취나물이 있는 곳은 그늘이고 그런 자리에서 나온 것들이 연하다. 이따금 양달에서 삐져나온 게 있는데 보기에도 억센 게 뜯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흔히 먹는, 잎이 푸르고 매끈한 건 흔히 먹는 취나물이고 허옇게 막이 끼어있는 것은 떡취라고도 하며 잎이 크고 넓은 곰취도 있다. 어느 것이든 다 맛있지만 쌈으로 먹을 때는 아무래도 잎이 매끈한 취가 적당하고 그 외에는 데쳐서 무치거나 말려서 묵나물로 하는 게 적당할 것이다.

집에 와서 펼쳐 보니 생각보다 적었다. 함께 간 동무는 묵나물을 한다고 널기까지 하는데 산행에 서투른 나는 서너 번 무쳐 먹을 정도밖에 뜯지 못했다. 하지만 생전 처음 나물을 해 본 나로서는 그만해도 대견했다. 맛에 취하고 향에 취하다 보니 계속 취나물 타령이고 그래서 취나물 이야기까지 쓰고 싶어진 걸까.

우리 집 뜰에도 취나물은 있다. 몇 해 전 어머니가 뜯어 오실 때 뿌리가 달린 것을 심었다. 너울거리는 잎이 탐스럽기는 해도 어딘가 억세 보인다. 산에 있었다면 연하고 튼실하게 자랄 나물이 모진 땅에서 홍역을 치른다. 가끔 삶아서 무쳐 봐도 산에서 뜯은 것과는 달리 뻣뻣한 게 맛이 없다. 취나물은 산에서 뜯어야 하는 것일까. 똑같은 나물인데 산에서 뜯어온 것을 양념장에 볶아낼 때처럼 입에 딱 붙질 않으니 묘하다.

뿌리박은 자리가 달라진 것 말고는 이유가 없다. 그 무렵 산에서 진달래를 캐다가 옮겨 심을 때도 그랬다. 잘못 옮겨 심은 것인지 혹은 거름이 센 탓인지 번번이 죽어버렸다. 애당초 뿌리박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 취나물 역시 옮겨질 때부터 적응을 하지 못하는 성 싶다. 송충이가 갈잎을 먹으면 배탈이 나듯 뿌리박은 곳을 떠나면서 파급된 부작용이다.

솔잎을 좋아하는 줄 모르고 갈잎을 먹이는가 하면 엉뚱하게 갈잎을 탐내는 송충이 부류도 있다. 억지로 먹는 경우든, 싫어하는 줄도 모르고 가당치 않게 요구하든 끝내는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릴 수 있다. 설령 그게 아니어도 고유의 맛을 잃어버리거나 시들어갈 테니 공교롭다. 팔자에 없는 관을 쓰면 이마가 벗어진다고 했다. 분수를 잊은 채 헛된 망상에 사로잡히면 멸망의 나락에 떨어진다. 취나물은 산나물이다. 들나물로 바뀌어서는 제 맛을 낼 수가 없다. 누구를 막론하고 고향을 찾아 옮겨주는 게 가장 큰 적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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