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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6.04 15:09:31
  • 최종수정2023.06.04 15:09:31

이정희

수필가

바람이 시원하다. 멀리 짙푸른 숲과 바람까지 싱그럽다. 무심코 바라보는 순간 새 한 마리가 펄쩍 날아오른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정도는 되어야 하늘에 날개를 달아주는 산새들 위상이 드러날 거라고 했는데, 천적인 맹금류에 쫓기고 있었던 것일까.

오래 전 병법에서는 그럴 경우 숲 속 어딘가 잠복해 있을 군사를 의심했다. 하늘을 향해 쏜살처럼 날아오르는 모습이 참으로 장관이었으나 목숨을 건 탈출이다. 하늘을 선회하던 새가 돌연 하강할 때는 먹이를 찾은 것일 수 있지만 대부분은 뭔가에 놀라 급히 날아오를 때였다. 얼마 후에는 안심을 한 듯 하늘 높이 날아가곤 했는데….

느낌이 묘하다. 평화로운 정경일수록 두려운 뭔가를 수반하지만 그 또한 섭리가 아닐까. 내가 본 그 새도 갑자기 사태에 놀랐겠지만 화들짝 날아오를 때의 하늘이 가장 푸르고 맑았을 거다. 우리 또한 심오한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면 운명이라는 복병에 놀랐을 때다. 위험은 그렇게 뜻밖의 아름다움을 창출한다.

엊그제 인근의 3층 건물에서 명랑한 새소리를 들었다. 숲속에서 듣는 것처럼 아름다운 소리에 놀란 것도 잠시, 먼저 온 친구가 유리창 사이에 낀 새를 보았다고 한다. 뒤따라 몇몇 친구가 와서 꺼내 주려고 했지만 너무 높았다. 저러다가 끝내는 죽을 텐데 살기 위한 몸부림이 어찌 아름다운 음악으로 들렸는지 섬뜩하다.

얼마 후 소리가 그쳤고 죽었는지 이후로 잠잠했다. 피가 맺히도록 울어대는 것도 모른 채 노래라고만 했다. 하기야 삶의 공식인지도 몰라. 유달리 아름다웠던 노래가 죽음을 피하기 위한 비명인 줄 몰랐던 그것은, 혹독한 운명이지만 그럴 때야말로 전성기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가끔 뒤뜰에서 음악회가 열린다. 내가 보는 음악회는 보통 저녁에 열리는데 녀석들은 첫새벽부터 야단이다. 5월이면 아침에 나온 애기 저녁에 인사한다고 할 정도로 해가 길다. 밤은 또 그만치 짧아서 눈붙일만하면 아침이고 그나마도 새벽부터 울어쌓는 녀석들 때문에 부스스 눈을 뜬다.

하지만 경쾌한 소리를 듣다 보면 나까지도 신난다. 박자와 음정이 정확하고 무엇보다 리듬이 맞았다. 악상도 다양해서 처음에는 3잇단음표 5잇단음표에서 갑자기 빠른 왈츠 곡처럼 혹은 4박자의 가보트로도 바뀐다.

보통 한꺼번에 우짖는데도 파트별로 부르는 듯 시끄럽지는 않다. 새들 역시 우리처럼 실력 차이가 있는 듯 잘 다듬어진 프로급 소리가 들린다. 뒤따라 어색한 소리가 한 번 들렸지만 나머지는 정확했던 것을 보면 단조로운 음에서 탈피하기 위한 불협화음이었다.

음악회가 아닐 수도 있다. 뒤죽박죽 소리를 들으면 대화를 나누는 성 싶은데 우선은 노래가 떠오른다. 보통 새가 우짖는다고 한다. 울부짖는 것은 슬픈 감정이되 우짖는 것은 명쾌한 느낌이 음악성을 띤다. 특별히 새가 운다고 할 경우 눈물은 보이지 않고 웃는다고 하자니 웃음소리도 없지만 노래로 생각하면 기쁨의 소리도 되고 구슬픈 뉘앙스는 눈물처럼도 느껴진다. 유리창에 낀 채 고통스러워했던 비명을 아름다운 노래로 착각했지만 기실은 죽음을 앞둔 비명이었지 않은가.

새들 또한 보기와는 딴판인 숙명을 타고났다. 날개는 비행기를 만들고 싶도록 환상이지만 그들이 있는 하늘 어름엔 맹금류가 판친다. 산새 들새 모여앉아 잠드는 숲도 어느 순간은 약육강식의 현장으로 돌변한다.

우리 역시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삶에 놀라곤 하지만 그럴수록 다부진 날개가 필요하다. 세상도, 넓고 넓은 하늘처럼 깊고 깊은 숲속처럼 환상적이지는 않았다. 인생찬가를 부를 때가 있고 때로는 운명의 비가를 부르면서 슬퍼하지만 푸른 하늘은 태풍의 선물이고 반짝이는 별은 암흑의 선물이다. 맑고 깨끗한 영혼도 시련의 결정체라면 문제될 건 없으리. 새들은 날개를 꺾이고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푸른 마음을 가꿀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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