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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1.14 15:18:55
  • 최종수정2024.01.14 15:18:55

이정희

수필가

눈이 내렸다. 하룻밤 사이에 핀 꽃이 천지에 가득하다. 처음 발자국을 내고 싶은 충동에 대문을 나섰다. 눈 내린 세상에 귀 기울이니 은하수 물결치는 소리가 사락사락 들렸다. 뒤미처 뜨락에 지붕에 눈꽃송이 피어나는 소리와 먼 산길 돌아가는 발자국 소리.

눈 속에서 벙그는 꿈이 생각할수록 설렌다. 얼어붙은 손에 입김을 넣어 가면서 가꾼 눈 속의 초상이 꽃 피는 사월보다 따습다. 설화 꽃가지에 둥지 튼 파랑새를 보았다. 눈 덮인 탱자 울에는 물망초가 푸르러졌다. 첫눈 오는 날 가시성을 뚫고 들어와 울던 노래라서 그렇게 고왔으리.

가끔 첫 새벽에 일어날 때는 인적미답의 숲을 생각한다. 어딘지 모르지만 먼 산골짜기 아무도 긷지 못했을 맑은 물소리가 들렸다. 골짜기 작은 새들은 이제 처음 꽃을 피우는 나뭇가지에서 울었다. 시작할 때의 열정이면 무슨 일이든 이루련만 포부는 식게 마련이다. 처음이니 '첫'으로 시작되는 말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일까.

특별히 예쁜 말이라면 '첫 나들이'다. 갓난아기가 처음 바깥에 나가는 것을 뜻하는데, 얼굴에 검정 칠을 한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잡귀를 물리치기 위해서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깥 행차를 그렇게 부른다니 감동이다. 오묘한 뜻은 물론 하필 숯검댕을 칠하는 것도 처음에 대한 조심스러운 자세를 나타낸다.

첫 나들이에 만전을 기한다고 검정을 칠하는 것도 중요하나 처음의 신비감도 끝까지 지켜줘야 할 게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는 처음 본 새를 어미로 생각하듯 아기에게 갓 보고 느낀 세상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려니. 벼르는 일일수록 동티가 나고 어그러진다. 작심삼일이 두려운 것은 처음의 패기가 무너지는 까닭이다.

유종의 미를 위해서라도 초심을 중요하지만 '첫 모 방정'이란다. 처음부터 모가 나올 경우 방심하게 되고 판세에 몰리면서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반면에 '첫 도 왕'은 처음 도가 나오면서 분발하게 된다. 처음부터 잘 되는 게 딱히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시종일관 잘 풀리면 좋으려니와, 쟁개비에 물 끓듯이 금방 식어 버린다. 처음부터 모가 나왔다고 좋아할 것은 아니지만, 도가 나올 때도 분발하라는 의미가 해학적이다.

시작만 강조보다는 마무리도 중요시했다. 상대방의 첫모를 비꼬는 대신 나중 난 뿔도 우뚝할 때가 있으니 격려하는 차원이다. 첫모 방정도 걱정이지만 중요한 것은 시작과 마무리의 탄력성이다. 일이 잘 풀릴수록 자중하고 그렇지 않을 때도 꿋꿋해야 하리.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처음에 대한 무조건적 설렘과 기대치는 조심해야 될 부분이었거늘.

문득 처음 낸 발자국에 아침이 소복소복 쌓인다. 숫눈길 걷는 사람만이 제 발자국을 남긴다. 함 속에 넣은 보석처럼 백 번 천 번 들어도 향기로운 덕담이다. 인생은, 가는 곳마다 한 발 앞서 다녀간 시인이 있음을 발견하는 거지만 숫눈길이라면 소망을 품어봄직 하지 않을까.

문득 숫눈길 가는 사람들이 "나처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꺼내 봐." 라고 하는 얘기가 들려온다. 그러자니 달게 잘 수도 없지만 처음 열어가는 기쁨은 그까짓 고통에 비할 것은 아니라고 했으리. 잠은 설쳤지만 이후 다가오는 모든 밤이 꿈처럼 아름다운 줄은 알고 있느냐고 반문할 것 같다. 딱 하루 잠을 설치면서 눈 쌓이는 밤의 신비를 간직하게 될 경우, 겨울밤 서정으로는 최고일 테니. 2024년 올해는 무슨 일이든 잘 풀릴 것 같다. 누구든지 새벽길 가는 사람이라야 첫 이슬 턴다고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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