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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겨울이면 콩나물국을 먹는다. 들기름에 볶은 뒤 자작하게 국물을 잡아 한소끔 끓어난 후 파 마늘과 김치 한쪽을 넣고 이듬 끓이면 얼큰한 국이 된다. 담백한 맛에 비해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조리도 간편하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먹거리였으되 미각으로나 영양학적으로나 뛰어난 식품이다.

어릴 적 안방의 윗목에는 콩나물시루가 있었다. 새벽에 무심코 잠을 깨면 어머니는 물을 주고 계셨다. 이제 막 물을 주고 나가신 후에 보면 조르르 조르르, 바위를 타고 흐르는 옹달샘같이 약한 물소리가 들렸다. 한줌 뽑아 콩나물밥을 하고 무칠 때마다 참 맛있게 먹었다. 음악처럼 귀여운 선율에 끌리다가 최근에는 그 자라는 과정에서 삶의 곡절을 생각했다.

콩나물을 키울 때는 일단 싹을 틔운다. 쥐눈이 콩을 씻어 한 이틀 부뚜막이나 아랫목에 놓으면 싹이 나온다. 얼금얼금한 천을 깔고 시루에 안친 뒤 적당한 그릇에 막대기 두 개를 걸쳐 놓는다. 그 다음 보자기로 덮어둔 채 수시로 물을 주면 시루 속이 빡빡하도록 올라온다. 처음에는 누워 있고 뒤집어지고 가지각색이었으나 일정시기가 되면 똑바로 서서 탄탄히 뿌리박고 있다.

가뭄에 멀리까지 뿌리를 내는 초목마냥 어릴 때 본 시루 속의 콩나물도 한바가지 물을 나눠 먹어야 되는 야박한 배급 때문에 필사적으로 물을 받아야 했지만 그렇게 빠져나가도 실하게 올라왔다. 한 바가지 물도 받아먹을 때는 필사적이면서 버릴 때는 과감해지는 속성 때문에 소박한 삶에서도 호기를 부릴 수 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부질없이 살아온 중에도 나름대로 얻어지는 그보다 더한 축복은 없다. 물은 남김없이 빠져나갔고 바로 그 물이라고 할 지나온 세월 또한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나 우리 모두는 그 옛날 어머니가 부어주는 물을 받아 머리가 크고 통통해진 콩나물처럼 연륜을 자랑하는 나이가 되고 업적이 늘어났다.

물색없이 빠져나가는 걸 보면 밑 빠진 독 같아도 엉성한 헝겊을 깔았다. 그것이 곧 여과기 구실로 된다. 물은 흘러나가도 적당히 촘촘한 시아 때문에 수분을 유지하며 사각사각 씹히는 콩나물 특유의 맛이 형성되었다.

콩나물에 부어주고 내려간 물은 사라진 세월로 볼 수 있겠다. 한 번 가면 오지 않아도 흔적은 남아 있고 증명이나 하듯 우리는 노련한 삶의 주역으로 남았다. 물을 받아먹고는 살아도 잠긴 것은 아니고 시나브로 빠져나가도 수분은 남아 있는 재배법이었다.

입추의 여지없이 비좁은 속에서 사는 것 또한 묘리다. 다 빠져나가도 물을 받는 그릇 때문에 수분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잘 자란 것이다. 그 물이라는 것 또한 기왕에 부어 준 물을 받아먹는다. 어쩌다 갈아 주기는 해도 여러 번 붓는 동안 뜨물처럼 뿌옇게 바랜 빛깔이 말똥말똥한 것보다 거북스럽지 않다. 새로 갈지 않아 뿌옇게 된 물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나 할까.

콩에는 단백질이 많고 콩나물에는 비타민 C가 많다. 지치기 쉬운 여름에는 콩자반이나 콩국수 등을 먹으면서 단백질을 보충하고 겨울에는 나물로 키워 비타민 C를 보충했다. 푸성귀가 흔할 때는 의미가 없지만 온실이 없던 그 옛날 콩나물은 겨울에도 신선한 나물로 으뜸이었다. 순수하게 물만 줘서 길렀으니 수경재배의 원조로도 볼 수 있다. 사 먹는 콩나물은 거름을 주기도 한다지만 집에서 키워 먹을 때는 물만 주기 때문에 이렇다 할 약해가 없다.

저녁에는 콩나물밥을 안쳤다. 김치를 깔고 들기름을 친 뒤 쌀을 얹었다. 뜸을 푹 들인 뒤 양념장에 비벼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먹는 것도 서민의 기호에 딱 맞고 자라는 모습까지 소박한 서민의 취향 그대로인 콩나물이 오늘 따라 맛깔스럽다. 빡빡한 삶에서의 여유가 우리 삶의 자양분이 될 것으로 생각하니 각박한 삶도 견딜만해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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