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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무장아찌를 담았다. 음력설을 쇠고 난 뒤 겨우내 먹은 동치미를 정리하다 보면 여남은 개씩 남는다. 된장에 박으면 발그스름 물이 들고 맛깔스러운 장아찌가 된다. 채 썰어서 통깨와 참기름을 넣어 무치면 칼칼하니 맛있다. 너무 더워서 밥도 먹기 싫은 날 찬밥에 얹어 먹으면 느른해진 몸도 거뜬해진다.

뻐꾸기가 울 즈음에는 마늘종이 나온다. 그걸 뽑아서 고추장에 박아 두고 조금씩 무쳐 먹는다. 마늘을 캐고 나면 금방 7월이고 오이가 성시를 이룬다. 지금은 봄에도 흔하지만 진짜 맛난 것은 된볕에 쓴맛이 나는 오이다. 두 접 세 접 사다가 소금물을 끓여 붓는다. 워낙 큰 독이라 대강 먹은 뒤 헹굴 때는 반 광주리씩 남게 되고 고추장에 박으면 놀빛마냥 결이 삭는다. 동치미도 발그름하지만 몸 자체가 투명한 오이는 더더욱 발긋하게 보인다.

5월에는 더덕 장아찌를 만든다. 덩굴을 올린 뒤 한 3년 지나자 도라지처럼 굵어졌고 뽀얗게 손질해서 고추장에 넣었다. 적당한 시기에 꺼내서 참기름에만 무쳐도 고기반찬 밀어 놓고 먹을 정도로 맛있다. 산에서 캔 더덕만은 못해도 직접 심어서 가꿨고 보리쌀을 띄워 만든 고추장도 특유의 맛을 부추겼을 것이다.

양파나 깻잎 풋고추가 들어갈 때는 간장으로도 담근다. 특별히 통마늘로 박을 때 보면 거무스름한 게 빛깔도 먹음직스럽다. 간장을 적게 잡으면 들뜨기 쉽고 많이 넣다 보면 장아찌라도 너무 짜다. 7부 정도 잠기게 한 뒤 몇 번 뒤적이면 간이 골고루 배면서 짠 맛이 덜하다. 생강과 마늘 쪽파를 넣거나 식초와 매실 등을 가미하면 특유의 향내가 천연의 방부제 역할이 된다.

요즈음 짠 음식이 건강에 나쁘다고 하지만 더러는 필요할 때가 있다. 땀이 나지 않는 겨울에는 장아찌를 먹으면서까지 보충할 것은 없으나 탈수되기 쉬운 여름에는 필히 섭취해야 될 음식이다. 그러한 특징 때문인지 겨울에는 장아찌 먹을 일이 별반 없다고 생각했는데 기상천외한 고드름장아찌 이야기를 들었다.

물색없이 싱거운 사람을 그리 불렀던 거다. 장아찌 박을 재료에 얼마나 고심했으면 고드름을 다 생각했을까, 그야말로 오리지널 자연산에 안성맞춤이지만 고추장 된장이 흥건해질까 봐 물기를 말리는 것을 보면 터무니없다. 말리기는커녕 녹는 대로 질척일 테니 고드름장아찌처럼 싱겁게 끝났을 테지만 장아찌만큼은 짜야 된다는 주장이 싱겁기만 하면 되는 줄 아는 우리에게 일부 자극도 주었을 테지.

특별히 땀을 흘리면서 수분이 부족해질 때 장아찌를 즐겨먹던 사람이 고드름을 보고는 장아찌 운운하며 짭짤해야 되는 의미를 강조했는지도 모르겠다. 소금은 몰라도 메주로 만든 고추장과 거기 넣은 장아찌의 짠맛은 괜찮다. 설탕과는 달리 곶감의 단맛은 탈이 없다. 짜다고만 할 게 아니라는 뭐 그런 느낌이었다.

물량이 흔할 때 간장을 붓고 파 마늘 등의 양념을 한 저장식품이 장아찌라면 철철 푸성귀가 흔한 지금으로서는 번거로울 수 있다. 결국 금방 금방 해 먹는 겉절이 문화가 발달했지만 결이 삭으면서 맛이 드는 장아찌 문화가 아쉽다. 된장 또는 고추장에 박은 깻잎과 무의 가지런한 잎맥과 매끈한 결에서 예술품을 대하는 것 같던 신비감이 까닭 모르게 그리워진다. 어쩔 수 없는 장아찌 세대였을까.

음식은 골고루 섭취하는 게 우선이다. 마트에만 가도 먹거리가 흔해서 바쁜 사람들에게 아주 요긴하다. 금방 금방 무쳐먹는 겉절이 음식과 오랜 날 두고 만드는 장아찌 식품과의 조화가 아쉬운 거다. 여름내 장아찌를 즐겨 먹던 사람이 고드름을 보고 장아찌를 생각하며 무료함을 달래듯 겉절이 문화에 익숙한 중에도 가끔은 장아찌를 먹으면서 급해지기 쉬운 기질을 완화시키면 좋겠다. 우리 삶도 겉절이 문화의 산뜻한 느낌에 장아찌 특유의 진솔한 이미지가 가미되면 좀 더 윤택해지지 않을까. 음식도 가끔 성격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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