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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보니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곧 이어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면서 묵은 해는 가고 계묘년 새해의 첫 페이지가 열렸다. 감격의 순간을 보기 위해 추운 날씨도 무릅쓰고 모여든 인파다. 마침내 11시 59분 30초에 카운트다운과 함께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제야의 종은 매년 12월 31일 자정, 서울 종로에 있는 보신각종을 33 번 연속해서 치는 것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 대한 감회와 새해의 설렘이 동시에 교차되는 순간을 종소리에 담는 특별한 행사이다. 올해는 또 코로나 19 팬데믹을 지나 3년 만에 대면으로 열린 만큼 더욱 수수로운 느낌이었다.

종이 악기로 등장한 것은 중국 고대 왕조부터다. 편종(編鐘)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1116년에 국악기로 자리 잡았다. 나 어릴 적만 해도 종소리로 수업의 시작과 끝남을 알렸다. 종교적인 의식은 물론 방황하는 사람도 듣는 순간 고향 생각이 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도구로서는 최상이다. 서양에서는 차임벨이라고 하는 작은 종으로 시각을 알리거나 호출용으로 쓴 것을 보면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종소리에 관련된 애틋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 언젠가 프랑스의 한 군인이 누명을 쓰고 사형을 언도받게 되었다. 사형수는 결혼을 앞둔 상황이고 약혼녀는 무죄를 호소했으나, 증거가 뚜렷해서 판결을 취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드디어 문제의 그 날 이제 11시 종소리가 울리면 사형을 집행하게 될 순간인데 정각이 되어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곧 바로 종지기를 찾아갔으나 그는 이제 막 종을 치고 내려오는 중이었다. 놀란 사람들이 종각으로 달려가니 온몸에 상처를 입은 약혼녀가 보였다. 집행시간이 가까워지자 종에 바짝 붙어 매달린 채 종소리가 나는 것을 막았고 그래서 소동이 벌어졌던 것. 약혼녀의 집념에 감동된 군사재판에서는 무죄를 선언했다. 사형수는 종소리가 아닌 약혼녀의 절절한 마음을 느꼈을 테고 뒤미처 집행관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사형까지도 번복하는 예화를 남겼다.

오래 전 강원도의 산길을 가던 한 나그네가 울부짖는 까치를 보았다. 구렁이가 바야흐로 까치를 잡아먹으려는 순간이었다. 불쌍한 마음에 활로 구렁이를 쏘아 죽였다. 얼마 후 날이 저물어 한 집에서 묵게 되었는데 잠결에 깨어보니 구렁이가 친친 감고는 남편 구렁이의 원수를 갚을 거라고 했다. 불쌍해서 그랬다고 변명을 하니 근처의 종각에 가서 종을 치면 살려 주겠다고 했다.

밖으로 나오니 과연 종각이 보였으나 높아서 올라갈 수가 없다. 틀렸다고 체념하는 순간 땡땡 종소리가 들렸다. 날이 밝았다. 의아한 마음에 가 보니 까치 두 마리가 죽어 있다. 구렁이에게 잡아먹힐 뻔했던 까치가 종을 부딪쳐 소리를 낸 것이다. 한낱 미물의 얘기고 전설이라 해도 마음이 아려오는 것은 은혜를 갚는 마음이 종소리의 여운으로 표현된 것 때문이다.

하나가 종소리가 나지 않도록 온몸으로 막아 약혼자를 살렸다면, 또 하나는 소리를 내서 은인을 구했다.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힘껏 쳐 주고 혹 불리할 때는 소리를 막아주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릴 적 길을 가다가도 교회 종소리가 들리면 까닭 모르게 숙연해지곤 했었지. 제야의 종소리 또한 새로운 한 해를 맞고 싶어 하는 열망을 담고 있다. 벅찬 설렘과 포부와는 달리 실망스러운 날이 된다 해도 그 순간만은 누구라 할 것 없이 경건해진다.

종소리가 아름다운 것은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울리는 까닭이다. 자기를 위해 울리는 소리에는 감동이 없다. 종이 악기라면, 더불어 혼자 울지 못하고 두드리고 때리는 힘에 의해서 소리가 난다면 다른 사람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 퍼져나가야 될 음향이다. 만 번의 두드림으로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소리처럼 검은 토끼 계묘년 새해는 복잡다단한 중에도 보람찬 한해가 되기를 구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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