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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종일 동동거렸다. 모처럼 친구들이 오기로 한 오늘, 곰국을 끓여 놓은 뒤 나물을 준비했다. 참나물과 시금치는 살짝 데쳐서 무치고 도라지와 콩나물도 갖은 양념을 넣고 볶아낸다. 예쁘게 접시에 담은 뒤에는 실고추와 통깨를 고명으로 뿌린다.

고명은 음식의 모양과 빛깔을 돋보이게 하고 맛을 더하기 위하여 덧뿌리는 양념이다. 버섯이나 실고추 대추 밤 호두 잣과 통깨 등이 있으며 생선도 고명이 들어가면 먹음직스럽다. 오늘은 특별히 굴비를 준비했다. 비늘을 떼어내고 어지간히 익을 즈음에 한 번 뒤집어서 고루고루 익힌다. 마지막으로 상에 놓을 때 실고추와 통깨를 솔솔 뿌려두는 것이다.

고춧가루를 쓰지 않는 제사 음식도 그런 식으로 요리를 한다. 번거롭기는 하지만 그만치 맛깔스러운 음식으로 바뀐다. 맛은 물론이고 빛깔도 정갈하다. 나물을 볶거나 생선찜에도 고명을 얹으면서 제수 음식을 만드는 정성을 나타내듯이 나는 또 일일이 고명을 얹으면서 손님 맞는 정성을 표현하고 있다. 녹두부침개도 명절 때처럼 김치와 당파 다시마 등을 일정한 크기로 썰었다. 그것을 녹두반죽에 고명으로 얹고는 앞뒤로 뒤집어서 노릇노릇하게 부쳤다.

얼마 후 약속 시간에 친구들이 모였다. 맛도 맛이지만 어쩜 이렇게 예쁜 거냐고 감탄이다. 나는 단지 고명 얹는 것을 좋아한 것뿐인데 웬 호들갑이지? 이것저것 끼얹은 게 복잡해 보이지만 양념을 채 썰어 두면 아주 간단하다. 잠깐만 수고하면 환상적인 빛깔을 연출할 수 있다. 양념이라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큼직한 접시에 모듬모듬 담아두면 섞이지 않는다.

말은 그래도 준비는 쉽지 않을 거라고들 했다. 마지막으로 곰국을 뜰 때도 부추와 파, 마늘을 채쳐서 수육 위에 소복이 끼얹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머님께 전수받은 것 때문인지 어지간하면 고명을 쓴다. 국수장국에도 계란지단과 목이버섯을 얹으면 파랗게 데친 시금치와 잘 어울렸다. 정월 초, 떡국을 끓일 때면 달걀지단을 얹는 것도 누차 보았다.

그래서일까. 어머님이 1년 내 실고추를 떨어지지 않게 준비해 오신 것은. 고춧가루를 빻을 때 한 근은 되게 썰어 오시고는 시금치나 숙주나물을 무칠 때 솔솔 끼얹는다. 고명이라면 흔히 잣과 실고추, 통깨를 쓰고 통깨 중에서도 검은 깨 흑임자가 좋다지만 실고추와 통깨만으로도 충분하다.

김치 중에서도 백김치는 고명으로 효과를 낸다. 우리 아이들 어릴 때 어머님은 김장철이면 백김치를 담그셨다. 실고추, 대추, 밤, 호두, 은행, 잣과 통깨 등 고명이란 고명은 다 들어갔다. 파, 마늘과 양념 모두를 채쳐서 절인 배추 포기마다 고명으로 넣는다.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애들을 위해서 고춧가루 대신 담백한 양념을 넣은 번거로운 김치 만들기는 무려 5년이나 이어졌다.

적당히 익은 뒤 썰어서 탕기에 담으면 솔솔 삐져나온 고명이 잘박한 국물에 둥둥 떠다닌다. 나물과 생선찜을 할 때처럼 고명의 효과는 대단했다. 입맛이 까다로운 우리 애들도 유일하게 좋아했던 김치다. 모처럼 준비한 식재료가 품질은 다소 떨어져도 고명으로 효과를 낼 수 있으면 방법인 줄 알겠다. 아들 많은 집에서 화초같이 예쁜 여식도 고명딸이라고 하면서 다르게는 양념딸이라고도 했다. 고명은 특히나 양념의 상징이다.

고명을 얹는다고 맛이 달라지랴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을 테니 가끔은 눈으로도 먹는다. 인생의 고명 또한 삶 자체를 바꿀 수는 없어도 인생관 등을 정립하다 보면 새로운 삶의 공식도 깨우치면서 차원 높은 삶이 된다. 힘들 때도 소망 등은 고명의 효과로 충분할 테니 권장할 만하다. 양념이 푸짐할 때는 음식도 맛깔스러운 것처럼 인생의 고명이라 할 가치관이나 목표가 뚜렷하면 나름 성공한 날들이려니. 고명을 좋아하다 보니 여러모로 고유의 맛을 생각하게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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