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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가난한 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은 만원을 꺼내 주며 뷔페에 가서 실컷 먹고 오라고 했다. 그 즈음 눈에 띄게 수척해진 것이 안쓰러워 그리 한 것인데, 마음씨 고운 아내는 혼자 가서 먹지 못하고 시아버지께 드렸다. 신세진 친구 분들과 약주나 한잔 잡수시라고 덧붙였으나 시아버지 역시 며느리가 준 용돈이라고 자랑만 했다. 돈은 결국 할아버지를 통해 손녀딸에게까지 갔다. 가난한 살림을 아는 딸도 냉큼 쓰지 못하고 가방을 사는 데 보태라고 엄마에게 건네주었다.

읽고 나서 마음이 따스해지던 일화다. 구태여 따진다면 만원짜리 인정이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깊이 때문인지 오늘따라 참으로 감동적이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해쓱해진 게 안타까워서 비상금을 털어 준 가장도 수입은 넉넉지 못한 사람일 거다. 아내 역시 가난에 찌든 모습이 상상되지만 모처럼 생긴 돈을 시아버지께 드리는 마음 씀씀이가 여간 흐벅진 게 아니다. 사는 건 팍팍해도 따스한 가정의 분위기는 얼마든지 꽃피울 수 있다.

가끔 애틋한 가정의 행복이 그리울 때가 있다. 바쁘게 지내다 보면 함께 지내는 시간은 줄어들고 정이 깊어질 새가 없다. 뭐랄까, 자기만의 세계에 몰입하다 보니 조금씩 각박해지는 느낌이다. 형제가 많다 보면 각자 방을 가질 수 없이 함께 지낼 동안 형성되는 끈끈한 정이 아쉽다고나 할지.

먹는 데서도 그런 양상은 나타난다. 우리들 어려서는 커다란 대접에 여러 가지 반찬을 넣고 비벼서 함께 먹기도 했으나 요즈음 같으면 위생적인 이유 때문에도 절대 그런 일이 없다. 필요한 만큼 덜어서 먹는 게 합리적이고 위생적이기는 하되 가끔은 그렇게 둘러앉아 먹던 정경이 도란도란 따스한 분위기로 다가오곤 한다.

인정은 가끔 그렇게 부족한 여건에서 돈독해지기도 한다. 만 원의 행복은 가난한 집에서 더 의미가 있을 거다. 오래 전에 들은 얘기라서 물가 상승률 대비해도 극히 적은 돈이지만 잔돈푼으로 온 가족이 정을 나누는 기쁨이 잡힐 듯하다. 부유하면서 화목한 가정도 많지만 조촐한 행복과 운치도 나름 소중하다. 조금씩 썰렁해지는 가을이라 더 그런 느낌이었는지 모르겠다. 같은 내용이라도 날씨가 춥거나 서글픈 처지가 되었을 때 더 실감이 간다. 인정이란 넉넉하지 않아도 충분히 나눌 수 있다고나 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대부분 좋은 집에서 격조 높은 생활을 원한다. 단지 고급스러운 벽난로에 앉아 비싼 커피를 마시며 살아도, 연탄난로 의지해 사는 집안의 오붓한 행복이 아쉬울 수 있다. 호화로운 양탄자와 실내 장식에 덮여 지내도 화목하지 않으면 찬바람만 돌기 때문이다. 만원 한 장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가난 속에서도 가정의 화목이 드러나게 될 경우 더더욱 따스한 인정이다.

가끔 그 집안 분위기를 생각해 본다. 항상 웃음꽃이 피어나겠지. 특별히 만원만 가지고도 온 가족이 화목하게 살 수 있으니 가족을 먼저 생각했다. 아침마다 창가에는 새들의 노래가 예쁘고 밤이면 별도 반짝일 테니 행복의 산실이다. 비록 만원이지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소중한 행복이었기 때문에.

가난이 들어오면 행복은 밖으로 나가게 되지만 어느 정도는 마음으로 좌우된다. 살림도 윤택하고 분위기까지 따스하면 바랄 게 없으나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든지 진솔한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하는 그 점이다. 앞서 나온 가정도 식구 수대로 불평을 일삼는다면 가난하면서 분위기까지 차가운 최악의 경우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너무 가난해서 나눠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훈훈하게 해 주는 인정으로 발전했고 나눌수록 커지는 인정으로 드러났을까. 작아도 인정이고 소박해도 나눔이라면 콩 한 쪽도 나눌 수 있는 조촐한 마음이 아쉽다. 우리는 자기가 꿈꾸고 생각해 온 만큼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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