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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8.11 14:16:11
  • 최종수정2024.08.11 14:16:11

이정희

수필가

여름이면 모피 값이 절반은 떨어진다. 애당초 400만원에서 다운된 200만원도 만만치는 않으나 '하로동선(夏爐冬扇)'이다. 여름에 화로를 장만하고 겨울에 부채를 준비한다. 그 바람에 비싼 코트지만 엄두를 냈다.

가격도 있지만 복중에 삼계탕을 먹는다. 여름이면 덥다고 타박이나 더위를 피하는 피서避暑가 있다면 다스리는 극서克暑도 있음직하다. 겨울 부채 또한 겨울일수록 차가워야 된다면 나름 꿰맞춘 양면성이 그럴듯하다.

오늘도 무척 덥다. 이글이글 땡볕 속에서 세상은 하루하루 타들어갔지만 에어컨 없이 살고 있다. 에어컨을 틀어 놓고 있다가 나오면 시원했던 만치 후끈하게 더웠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무찔렀을까.

찾아보니 많다. 에어컨만은 못해도 죽부인, 등등거리도 있다. 요즈음 같은 열대야에서는 함께 자는 것도 부담인지 대나무로 사람 형상을 만들고는 죽부인이란다. 이름부터가 해학적이고 등나무 줄기로 엮은 통풍구 등등거리는 느낌도 시원하다. 대청마루에 꽃무늬 화문석을 깔고 부채질할 때는 왕골의 깔깔한 질감과 꽃무늬 돗자리 때문에 더위가 파고들 수 없다.

쥘부채 여백마다 산수화도 시원하다. 느티나무에 그네를 매고 솔밭에서는 활쏘기다. 누각에서 투호를 던지고 바둑에 연꽃 감상과 글짓기라면 더위도 주춤한다. 냇물에 발 담그고 매미 소리 듣는 건 지금도 자연스럽다. 정약용이 설파했던 순수 자연피서법이 캠핑차를 타고 계곡을 찾아 떠나는 이상으로 멋지다.

부지런한 농사꾼이 한겨울에 여름을 준비하듯 현명한 인생 주자도 어려울 때 소망의 굄돌을 찾는다. 날씨를 견디는 게 특히 노약자에게는 만만치 않으나 뜨거운 여름 화로에 한증까지 보태고, 겨울에 냉면까지 먹는 묘수를 적용하면 추워도 춥지 않고 더워도 덥지 않은 자동체온 조절 시스템으로 바뀐다. 힘들어도 힘들지 않고 슬퍼도 웃을 수 있는 반전이야말로 우리 삶의 비장카드였던 것.

하지만 삼복더위에는 등등거리를 입고 죽부인을 끼고 자도 역부족이다. 오뉴월 염천에서 마지막 비책으로 산에 토굴을 파고 한증을 했다. 견디다 견디다 토굴까지 만들고는 훨씬 더 뜨거운 열기로 열기를 무찔렀다.

날씨를 부추기는 것은 춥다고 덥다고 끌탕하는 우리들 속내다. 겨울이 따스하면 해충이 살아남게 되고 여름도 덥지 않으면 노폐물이 쌓인다. 춥다고 덥다고 속 끓일 것만 아니다. 우리 과연 무엇 때문에 더운 것인지 헤아리면 절망도 소망의 근원이 된다.

복중에 산 모피 한 장 교훈이 적지 않다. 귀 끝이 아리게 불던 삭풍이 생각나고 귀뚜라미 합창단의 가을 서곡까지 들었다. 섬돌에서 감나무 등걸에서 예쁘고 세밀한 그 소리는 참빗같이 쫀쫀한 날개를 비벼서 낸다는데 비약하면 또 무더위 끝에 나오지 않았을까. 퍼런 뽕잎 먹고도 뽀얗게 명주실 잣는 산뽕누에처럼. 그렇지 않고서야 막바지 더위사냥이나 하듯 가을 서곡을 보낼 리 없다.

그렇게 더웠으니 끝은 나겠지? 밤에는 또 다양한 리스트의 노래까지다. 가을 음악회를 위해 화음이나 맞추듯 귀뚤귀뚤 찌르르르 울어쌓겠지. 초가을이면 심리적으로도 서늘해진다. 창밖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미명이 걷히면서 쌀랑쌀랑해진다. 오랜 폭염에 소나기 예보도 많았으니 이제는 시원해질 것을 믿는다. 첫새벽 귀뚜라미 덕을 단단히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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