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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빗속을 걷는다. 도서관에서 가져 온 신문 한 장만 받쳐 들고 가랑비 뿌리는 오솔길을 걷는다. 마을로 들어가는 직선 코스 대신 저만치 구부러진 길을 따라 걷는다. 마음이 푸근해진다. 다소 멀기는 해도 그렇게 걸어가면서 오솔길이 만들어낸 곡선의 의미를 생각한다.

두 점을 잇는 가장 짧은 선은 직선이다. 그 때문은 아니겠지만 어딘가 딱딱한 느낌이다. 그에 비해 곡선은 훨씬 부드럽다. 직선보다 완만해 보이기도 하지만 보다 원숙한 경지가 그려진다. 앞으로 갈 때는 보이지 않다가 삶의 후반부에 비로소 드러나는 자기 성찰과 사색의 장이다.

어딘지 모르게 자연의 모습과도 닮았다. 마을은 물론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도 둥글다. 시냇물을 봐도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구불구불 돌아 흐른다. 그에 비해 직선은 어줍지 않은 문명의 찌꺼기처럼 보인다. 경쟁하듯 올라가는 빌딩과 수많은 고속도로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달리기만 할 뿐 돌아갈 줄 모르는 철부지의 고집이 느껴진다.

곡선은 좀 더 타협적이다. 시간은 걸리지만 작은 것까지 배려하는 등 근원적인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 직선의 추진력만은 못해도 깊은 속까지 헤아리기 때문에 여타 잡음이 생기지 않는다. 빠르다고 하는 직선이 정작 중요할 때 곡선을 앞지르지 못하는 걸 보면, 무엇이든 덮어가는 곡선보다 중요한 것은 없지 싶다.

절친한 친구 한 사람은 성격이 무척 급했다. 아침이면 서둘러 출근하지만 열쇠나 휴대폰을 잊고 오는 게 다반사라고 했다. 빨리는 왔는데 열쇠가 없으니 서두른다고 해야 몇 배로 늦어진단다. 애당초 차근차근 왔더라면 오히려 번거롭지 않았다. 빠른 것 같아도 지체되는 경우는 허다했다. 직선의 그것도 필요할 때는 있다.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는 기질이 기강을 바로 잡기도 한다. 일을 처리하는 추진력도 직선의 이미지를 닮았으나 약간의 파격도 없으면 어딘가 불안하다.

왜 그런지 직선이 성격에 맞았다. 맺고 끊는 걸 좋아했던 만큼 약간은 모난 직선이 더 끌렸다. 그게 지나쳐 부러지기도 하는 건 알지만 곡선은 부드러운 대신 약간은 느긋한 데가 있다. 여유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나쁘게는 늑장을 부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은 곡선이 편해지면서 외곬으로 나가는 고집도 수그러졌다. 왜 그렇게 바뀌었는지 까닭은 모르지만 한 번 굽히면 수월한데 괜한 고집을 부리면서 힘든 일도 많았다. 아직도 그 기질은 여전하지만 바다로 가기 위해 한 바퀴 도는 여울과 불 속에서 굽히는 쇠처럼 곧게 펴지기 위한 과정임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좋아했던 주변의 모두는 곡선으로 이루어졌다. 산자락을 봐도 굽이굽이 봉우리가 완만한 느낌이다. 동구 밖 큰 길은 물론 강물도 어우러져 흐른다. 그냥 길이고 강이지만 둥글려지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을 거다. 건물 같은 게 잠깐 사이에 올라간다면 향수를 자아내던 자연은 오랜 날 두고 만들어진다.

아홉 살 때부터 객지 생활을 해 온 나는 일요일이면 십리 길을 걸어서 집에를 가곤 했다. 시내를 벗어나면 들판이 나오고 달래 강이 보인다. 강변의 돌무더기를 밟고 가다 보면 생각이 많았다. 동그마니 내려 온 하늘과 구름을 볼 때마다 금방 떠나 온 모나고 칙칙한 회색 공간이 떠올랐다. 관공서가 있고 학교가 많아서 여러 가지로 편리했다. 공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머물러 살았어도 쉴 곳은 곡선의 영역인 자연임을 생각한 것이다.

비가 조금씩 그치고 있다. 오솔길도 거반 끝났는지 처음 접어든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느라고 분주한 긴장의 연속에서 약간은 굽힐 수 있는 파격을 본다. 아직도 그 기질은 여전하지만 더 이상 구부러질 게 없는 곡선의 이미지를 보면서 온화한 성품을 견지하고 싶다. 빗길에서 본 오솔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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