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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예쁘다. 백두산 주변의 들꽃 사진이 유달리 산뜻하다. 바닥을 기는 떨기꽃 뿐인데도 한 폭 풍경화를 보는 느낌이다. 고산지대라서 기온이 낮고 모진 바람 뿐인데도 의연히 곱다. 지난 초겨울, 강원도 사는 친구 집에 머무르면서 맛있게 먹은 배추김치가 생각났다.

며칠 전에 담갔다는 김장김치가 얼마나 맛있는지 몰랐다. 다른 반찬도 많은데 배추김치가 최고라고 수선을 피우자 김장도 하지 못했나 보다고 웃으면서 다시 내왔다. 게 눈 감추듯 했다. 썰지 않고 그냥 먹는 맛도 그렇지만 표고 700m에서 키운 고랭지 채소라는 게 특이했다. 쌈장에 곁들인 고갱이 배추도 사각사각한 게 맛있다. 고랭지 배추라고 말은 자주 들었어도 산골에서 직접 가꾼 배추를 먹은 건 처음이다.

이색적인 것은 문우의 친정어머니다. 아흔 나이답지 않게 신수가 깨끗해서 70노인네라도 곧이듣겠다. 딸 내외와 공기 좋고 물 맑은 데서 살기 때문으로 보인다. 건강은 선천적이지만 장수촌으로 알려진 파키스탄의 훈자, 에콰도르의 빌카밤바 러시아의 코카서스도 지대가 높아서 시원한 게 특징이다. 고지대 사는 사람들의 장수 비결을 거기서 본 느낌이다.

특별히 에베레스트와 안데스 산맥에는 만년설이 녹아 있기 때문에 미네랄 등이 풍부하다. 찬 물은 생체를 자극하여 노화를 막아준다. 문명과는 동떨어진 지역의 차갑고 선선한 기운으로 몸의 기능이 원활해지면서 건강의 모태가 된다. 인근 주민들이 식수로 이용하면서 장수촌이 됐을 것이다.

높은 산에서 밥을 지으면 설익는다는 말처럼 산소는 부족해도 소비량 또한 적고 일단은 청정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날씨가 더우면 기초 대사량이 더 많이 필요하고 산소가 많이 소모된다. 반면 이 곳은 여름에도 시원해서 열량 소비량이 적다. 고산지대에 장수촌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뒤뜰 나무숲에 들어서니 서리꽃이 잔뜩 피었다. 맞아, 오늘 아침 눈이 내리면서 꽃처럼 만발했었지, 그나마 볕이 들면서 죄다 녹았는데 여기만은 한나절이 되도록 여전히 곱다. 깊은 산속이라 당분간은 녹지 않을 테고 덧쌓이다 보면 겹꽃으로 피어나겠지.

마음이 상쾌해진다. 별천지에 온 것 같다. 여기서 살면 아프지 않고 건강해질 것 같다. 장수의 또 다른 비결은 정신적 문제일 수 있다. 환경의 청정도와 신선도는 건강에 관련될 만치 중요하나 물질에 집착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 깊은 산골짝에서 절경을 바라볼 동안은 정신적 갈등에 시달릴 이유가 없다.

고지대에 살면서 높은 이념을 갖는 게 바람직하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정신적 영역이라도 살찌울 수 있다. 사는 건 힘들어도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면 날개를 단 새처럼 자유로울 테니까, 고랭지 채소가 모진 바람 속에서 자란다면 고차원적 삶도 우여곡절에서 형성된다. 굴곡은 있을지언정 이념을 구도하는 삶 역시 명리를 좇아 온 삶보다 건전하다.

나도 고산식물 기질인 걸까. 성격인지 몰라도 다혈질인 사람들처럼 화를 내고 후회하는 일이 적다. 무슨 자랑도 아니고 냉한 체질을 드러낼까마는 고산지대의 장점과 결부시키면서 낙천적인 삶으로 바꾸고 싶다.

문제는 산소가 부족해서 생기는 호흡 곤란 등의 고산병이나, 맑은 공기 때문에 특이한 꽃으로 피듯 어려운 중에도 품격을 잃지 않으면 그 또한 아름다운 삶이다. 고랭지에서 보는 삶은 그래 늘 어기찬 걸까. 꽃이며 나무 과일 등 어느 것이든 예쁘고 튼실하다.

메마른 땅과 고르지 못한 날씨 때문에 뿌리박기는 힘들어도 고비만 넘기면 순조롭다. 적기는 해도 양질의 산소가 있고 차갑기는 해도 맑은 공기가 떠도는 한 고운 꽃처럼 나만의 소망과 지표가 있으니 또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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