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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삭풍이 몰아치는 해거름, 친구들과 팥죽을 먹는다. 동지는 보름 정도 남았으나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팥죽을 보니 추위도 누그러진다. 동짓날이면 팥죽을 쑤시던 어머니가 그립다. 어머니가 팥을 삶아내면 으깨서 체에 거르고 찹쌀 반죽으로는 새알심을 빚었다. 얼추 만들다 보면 옹달솥에서 설설 끓어나던 팥물이 참 정겨웠다.

정성껏 빚은 옹심이를 넣고 이듬으로 끓이면 뽀얗게 떠오르던 옹심이. 언니들은 옹심이라고 했고 동생들은 새알심이라고 우겼다. 동글동글 빚은 찹쌀반죽은 산새알이지만, 오목한 모양 때문에 옹심이라는 말도 그럴싸하다. 새알심이든 옹심이든 똑같이 앙증맞은 느낌에 새알옹심이라고 불렀을 거야.

어머니가 팥죽을 안치는 것은 옹달솥이었다. 부엌 초입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있었다. 다음에는 중간 솥, 그리고 옹달솥은 훨씬 작지만 밥은 물론 찌개를 안칠 때도 안성맞춤이었는데 동짓날 팥죽을 끓일 때도 예의 그 솥이다. 여느 때라면 자치기니 사방치기에 팔려 있을 시간이지만 동짓날은 심부름 한답시고 물을 길러 갔다.

동네 한복판 옹달샘은 유달리 맑고 시원했다. 여름에는 땀이 식을 만치 차가워도 겨울에는 김이 무럭무럭 올랐다. 초상이 나면 마을 사람들은 뚜껑을 해 덮고 비가 오면 흙물을 퍼낼 정도로 중요시했다. 정갈한 물로 쑤었으니 새알옹심이도 유다른 맛이었다. 옹심이든 새알심이든 다를 건 없으나, 새알심은 철부지 시절에 끌린 말이었으되 세상 쓴 맛을 알고 난 지금은 옹심이가 정겹다.

귀여운 이름은 물론 특별히 팥죽 한 그릇 먹어야 묵은해가 간다니, 그래서 동지 하면 팥죽을 생각하는지 몰라. 팥은 사포닌과 철분 비타민이 풍부해서 장 운동을 돕고 혈액순환을 돕는다. 흉년에는 논한 마지기와 팥죽 한 동이를 바꿔먹기도 했단다.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호랑이가 "팥죽 한 그릇 주면 안 잡아 먹지" 라고 능갈칠 정도로 별식이다. 얼마나 보양식이면 호랑이까지 벼르고 있었다. 그 어머니 역시 동지를 맞아 부잣집에서 팥죽 쑤는 도와주고는 한 그릇 얻어오다가 변을 당했을 법한데….

동지는 보통 양력 12월 21일 또는 22일이다. 올해는 음력 11월 10일 이후에 동지가 들었다. 60대 이상의 노년층에 마가 낀다는 노동지다. 음력 11월 초순일 때는 애동지라고 하며 어린아이가 많이 죽는다는 속설이 전한다. 아동지, 소동지, 아그동지, 모두 같은 말이며 팥죽 대신 팥밥 또는 팥시루떡을 먹는다. 중순에 들면 청, 장년층에 액이 낀다는 중동지다. 미신이지만 절실히 바라고 빌면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을 테니 오히려 친근하다.

서당의 입학식도 동지에 치렀다. 작은설이라고 부를 만치 특별한 절기다. 동지가 드는 입동 역시 크고 작은 행사가 많았다. 김장은 물론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쪄서 고사를 지냈다. 그 즈음에는 미꾸라지도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도랑에 숨어든다. 그것을 잡아서 추어탕을 끓이고 노인들을 대접하는 것이 도랑탕 잔치다. 충청도의 '입동 전 가위보리'는 입동 전에 가위처럼 두 개의 잎이 나와야 보리 풍년이 든다는 의미다. 경상도에서는 입동에 갈가마귀가 날아들면서 하얀 뱃살이 보일 때는 목화 농사가 잘 될 것으로 점쳤다.

이어서 동지와 함께 팥죽을 먹으면서 액막이를 했던 것. 고명으로 들어간 옹심이 또한 '옹'자가 들어갔다. 곡식도 잘 영글면 옹골차다. 매듭도 단단히 묶을 때는 옹쳐 맨다고 한다. 작고 오목한 옹달시루도 있거니와 옹벽은 토압에 견디도록 만들었다. 이해심이 적고 생각이 짧을 때는 옹졸하다지만 보통 야무진 것을 뜻한다면 액막이 역할은 톡톡히 할 것 같다.

동지에 대한 추억을 엮다 보니 올해도 어언 끝자락이다. 이제부터가 겨울이지만 동지에는 푸성귀까지 새 마음 든다. 동지를 기점으로 해가 길어지면서 꼬부랑 할머니도 지팡이 짚고 5리는 더 갈 수 있다. 혹한도 조금은 꺾일 테니 올 겨울 추위도 그렇게 견디고 싶다. 겨울이면 봄도 멀지 않다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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