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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모란이 피었다. 무성한 잎 사이로 터질 듯 붉은 꽃송이가 보였다. 초여름 꽃으로 모란보다 화려한 게 있을까. 꽃 중의 왕이라는 게 괜한 말은 아니다. 설총이 지었다는 화왕계가 생각났다. 신문왕이 하루는 설총에게 이야기를 청해 들었고 바로 그 얘기다.

꽃의 왕 모란에게 어느 날 꽃들이 찾아왔다. 먼저 예쁜 옷을 차려 입은 장미가 "저는 장미라고 하는데 왕의 덕망을 듣고 찾아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다음에는 볼품없이 생긴 백두옹(할미꽃)이 와서는 "임금님이 고량진미와 향기로운 차와 술을 먹는다 해도 양약이 있어야 정신을 맑게 하고 기운을 돋워 병독을 제거합니다. 생사와 삼베 등 좋은 게 있어도, 왕골과 띠 풀 같은 것도 소중히 여기며 만약을 대비하는 것과 같지요"라고 간했다,

왕의 마음은 장미에게 기울어졌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쁘고 화려한 장미도 아쉬웠다. 결국 백두옹의 간곡한 청을 받아들여 성군이 되기는 했으되 누구든 아리따운 모습에 빠지기 쉬운 허점을 풍자적으로 꼬집었다. 간사한 신하는 겉만 그럴듯하게 아첨하는 사람을, 백두옹은 고결한 품성의 선비와 충직한 신하를 뜻한다. 왕이 된 자는 곧 정직한 사람을 가까이하면서 선정을 베풀어야겠지만 나라를 망친 임금이 대부분 감언이설에 빠져 지낸 것을 보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부분인가 보다.

장미와 백두옹을 선택하는 화중왕 모란의 입장을 헤아려 본다. 측근에는 우선 아첨을 일삼는 부류가 있었을 테지. 정치보다는 임금의 비위만 맞추기 위해 아첨을 일삼고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기도 한다. 반면 출세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나라를 위한 정치를 생각하다 보면 바른 말을 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노여움을 사는 부류가 있다. 어떤 사람을 측근에 두느냐에 따라 정치의 면모가 달라지고 나라의 흥망이 좌우된다. 알면서도 일단은 현혹되는 건, 눈부신 장미에게 마음이 잠깐 기울었던 화왕계의 모란에게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소박하고 안존한 꽃이라면 자기 생김대로 그런 유형을 선호할 것이나 화려한 꽃일수록 유혹에 빠질 여지가 많고 설총은 그래서 모란이 등장하는 화왕계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겉모습만 꾸미고 내실을 멀리 하는 우리만 봐도 흔한 일이었으니까. 진실이 결코 화려하지 않다면 거짓은 대부분 귀에 솔깃하다. 낚싯대의 미끼와 덫에 놓는 먹이 또한 얼마나 먹음직스러웠던가. 장미는 예쁘고 화려하지만 집착하다 보면 진심이 담긴 백두옹의 충언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기름진 음식에 물리다 보면 담백한 음식이 생각나는 것처럼.

모란의 또 다른 상징은 부귀영화다. 탐스러운 송이가 무거운지 일찍 떨어지는 걸 보고 옛사람들은 부귀영화를 덧없는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꽃은 보통 열흘 안팎인데 모란은 그나마도 사흘에서 닷새뿐이다. 꽃도 예쁜 게 전부는 아니듯 부귀영화 또한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탐탁하지 않다기보다는 모든 걸 누리게 될수록 그것을 깨우치는 진솔한 마음이어야겠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모란은 참 예쁜 꽃이다. 넓적하니 푸른 잎과 탐스러운 꽃은 뜰이 다 환했다. 해마다 피는 꽃 모란은 우리 집에서도 단연 화중왕이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에 얽힌 일화 때문에 더 애착이 간다. 처음과는 달리 백두옹을 선택한 안목은 분명 남다른 데가 있다. 예쁘기만 해서는 화중왕이 될 수 없다는 덕목을 한 송이 꽃 모란에게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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