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속의 새처럼

이정희

수필가

알바트로스는 폭풍을 좋아한다. 폭풍 속을 즐겨 날아갔다는 의미다. 폭풍 앞에 설 때는 두려웠겠지만 바람을 탈 줄 알았다. 그렇게 얻은 하늘이라 더 푸르렀다. 새들 중에서 가장 커다란 날개도 믿지 않고 폭풍을 뚫고 나가면서 바람에 날개를 붙여주었다. 날개만 믿었으면 필경은 추락하고 말았다. 가장 높이 그리고 멀리 오르자니 바람을 가르는 비상책이 필요했다.

지상에서 가장 커다란 그 새는 날개 3.5m에 수명은 40∼50년이며 최고 80년까지 산다. 가장 높이 오래 날 수 있다는 것 또한 특징이다. 조류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키나 썰매가 가파른 곳을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비행술 때문이란다. 폭풍이 몰아치면 바람을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남은 여세로 날아가는 활강의 원리다. 날 동안 필요한 힘의 98%는 바람에서 얻고 자기 힘은 2%밖에 쓰지 않는다. 그래서 별명도 하늘을 믿는 늙은 새, 신천옹이다.

벌새는 또 아주 작다. 몸 길이는 6㎝ 남짓으로 1초에 무려 50번의 날갯짓을 한다. 꿀을 따먹을 동안의 정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는데 디지털 카메라로 잡아도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수명도 4년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그 날갯짓은 횟수가 많은 대신 폭이 좁았으나 알바트로스의 날갯짓은 광범위하다. 벌새는 눈앞의 꿀을 탐했고 알바트로스는 하늘을 동경해 왔으니까. 날개의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멀리 가느냐는 관점 차이다.

내 삶을 추적해 본다. 폭풍을 좋아하는 알바트로스와는 달리 내 힘만 믿고 의지할 때가 많았다.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해도 벌새처럼 대응하는 건 무모한 일이다. 꿀만 보고 버둥거린다면 폭풍 뒤에 펼쳐진 알바트로스의 하늘은 보기 어렵다. 써늘한 허공을 Œb고 가면서도 그 너머 펼쳐질 푸른 공간을 생각하면 희망적인데 이렇다 할 성과는 없이 피곤한 날들이었다.

엄청난 소용돌이도 뛰어만 들면 고요하다. 바람을 타고 꼭대기까지만 올라가면 스키어처럼 수직으로 미끄러지듯 달리게 된다. 폭풍도 두렵지 않다면서 뛰어든 결과다. 윙윙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도 폭풍의 군단을 밀어내며 올라가는 데만 주력했다. 마침내 폭풍의 정상에 오르면서 희대의 비행솜씨를 자랑한다. 배경이 뭘까.

이름도 멋진 새는 알에서 깨자마자 바닷물을 떠다닌다. 바다의 상어떼는 새끼들을 잡아먹으려 기다리고, 갓 태어난 새끼들은 원초적인 날갯짓을 배웠다. 비행술도 익히기 전에 깨우친 몸부림 끝에 더러는 상어의 밥이 되기도 하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녀석도 있다. 파도를 뚫고 죽음의 비행에 성공한 새끼들이다. 상어 때문에 천재적인 날개로 천부적인 비상을 하게 된다. 가장 멋진 비행은 죽음을 각오하는 모험에서 나왔다.

어미 알바트로스는 그것을 간파했다. 그렇지 않으면 바닷물에 알을 낳을 이유가 없다. 상어를 피한다 해도 거친 파도가 몰려온다. 새끼들은 결국 죽음의 비행 끝에 가장 높이 날아가는 꿈을 이루고 하늘과 바다의 자유까지 누렸다. 하늘을 외면하고 눈앞의 일에만 집착해서는 고단한 삶일 수밖에 없다.

하늘 높이 오르기 위해 날개보다 더 큰 바람개비를 택한 것이다. 유달리 큰 날개는 가졌으되 바람의 힘으로 태풍을 뚫는다. 갓 나와서는 상어 떼의 습격 때문에 벌새보다 힘든 날갯짓이었으나 파도를 딛고 날면서 바다의 왕자로 태어났다. 벌새처럼 순간순간을 활용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운명을 탈 수 있는 여유다. 가장 높은 파도타기로 수면을 굽어보고 가장 낮은 데서도 하늘을 보는 안목을 배운다. 곤한 삶의 뒤안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