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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이웃집 강아지 세 마리가 요즈음 들어 부쩍 사이가 좋아졌다. 풀어놓을 때는 서로 싸우고 소란을 피우는 등 시끄러웠는데 찬바람이 나면서 밤에도 등을 부비고 잘 만큼 정겹다. 무심히 바라보는 마음까지 따스해진다.

뉴질랜드의 양에 관한 얘기가 떠오른다. 수많은 양떼가 초원에서 풀을 뜯는 모습은 그림이다. 하늘을 보고 양떼를 보면 초원에도 구름이 떠가는 것처럼 아름답고 바로 그 양털을 깎는 시점이 초겨울이라고 한다.

양털이야 언제든지 깎을 수 있지만 그 때가 아니면 막무가내로 돌아다니고 장난을 치기 일쑤라는데 추워질 즈음에는 소동을 부리지 않고 조신해진다고 했다. 털을 믿고 한뎃잠을 자는 버릇도 없이 해가 지면 우리 안에 얌전히 들어온다니 신기하다.

양을 치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 모르겠다. 한 두 마리도 아니고 수많은 양을 깎을 때마다 힘들었을 건데 어느 때 의외로 순조로운 날이 있었고 그 시기가 우연히 추워지기 시작할 무렵이라는 것을 생각했겠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얌전한 것을 보고는 무릎을 치지 않았을까. 우리들 역시 추워질 때마다 1년을 정리하고 겨우살이 준비를 해 왔다. 11월말께가 되면 누구든 겨울을 준비하는 마무리 시점이었기 때문에.

요즈음의 풍경도 그랬다. 초겨울 나무도 물기를 내리면서 겨우살이에 들어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겨울에 꽝꽝 얼어 죽고 만다. 여름내 가으내 초록과 단풍을 뽐내다가도 추워지면 자연스럽게 잎을 떨어낸다. 일 년 내 따스하지 않고 추운 겨울이 있다는 것은 그렇게 뜻밖의 섭리를 표방한다.

꽃만 봐도 떨어지지 않고 계속 피어있다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아쉽거나 그립지 않고 결국 철부지 같은 마음으로 살게 된다. 예쁜 꽃도 언젠가는 떨어지고 초목 또한 서리를 모른 채 일 년 내내 푸르다면 또한 부자연스럽다. 이를테면 그러한 모습을 통해서 우리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등 차분한 품성을 견지하게 된다.

어느 새 동짓달이다. 오늘은 겨울치고는 그래도 푹한 날씨였는데 서너 시가 되자 금방 해가 지고 기온이 떨어졌다. 전형적인 초겨울 날씨였지만 누군가에게 기대면 한결 따스해질 것 같다. 평소에는 데면데면 굴었던 강아지들이 찬바람이 나면서 기대는 모습 또한 그 배경에서 나왔을 거다.

갈대가 손짓하는 언덕이 보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단풍이 조수처럼 빠지는 둔덕으로 들국화며 구절초가 한껏 어우러졌다. 밭둑의 청대콩은 다 부스러지고 떠나지 못한 계절이 비워진 날의 기억을 송출한다. 춥지만 어딘지 모르게 따스한 풍경이다. 십일월 초 북쪽에서 날아오는 기러기들 또한 V자 형상이고 그것을 보면 고즈넉한 마음이 들곤 했다.

자세히 보면 맨 앞에서 한 마리가 지휘를 했다. 남은 기러기들도 특유의 소리로 응원을 하면서 북돋워준다. 그 바람에 상승기류가 만들어져서 시속 60km의 속력을 유지하게 된다. 힘들까 봐 서로 교체를 하면서 먼 거리를 능히 날아가는 게 자못 인상적이다.

우리도 그렇게 어울려 산다. 사람 인(人)이라는 글자도 서로 의지하고 기대는 모습을 표현했다. 어려울 때 마음을 나누면 수월해진다. 기러기들 또한 여행이 끝나고 정착한 뒤에는 실랑이를 벌이고 티격태격할지언정 돌아갈 때는 서로 의지하면서 온기를 나눌 것이다. 어려움과 추위를 같은 맥락으로 봤을 때의 경우는 그렇다는 의미다. 일례로 나라에 변고가 생길 때도 보면 모두들 힘을 합쳐 물리치다가 태평성대에 접어드는 대로 내분이 일어나는 것과 비슷하다.

초겨울이라 해도 지금까지는 따스했지만 내일이면 영하로 떨어진다는 예보가 나왔다. 눈발이 날리고 삭풍이 몰아치겠지만 추운 만큼 따스해진다. 힘든 중에도 기댈 수 있는 의지는 생긴다. 데면데면 굴다가도 추워지면 바짝 붙어 다니면서 정겨운 강아지처럼, 먼 길을 갈 때마다 서로 보듬으면서 날아가는 기러기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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