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이정희

수필가

농부가 김매기를 하고 있다. 뙤약볕에서 논바닥을 훔치며 비료를 뿌린다. 둑 너머 할머니도 구슬땀을 흘리며 고구마 밭에서 북을 주고 있다. 둘 다 처음 시작한 게 사흘 전이라 얼추 끝났으련만 자라는 속도가 더 빠른지 노상 그 자리에서 뽑아내는 것 같다.

농사에는 문외한인데도 보는 마음은 편치가 않다. 풀만 없어도 수월할 것 같은데 잡초투성이 묵정밭이 옥토가 된 걸 보고는 생각을 바꿨다. 잡초는 쓸모없지만 반전되는 세상을 보면 속단할 수만은 없다. 가끔 폭우 속에서 논둑을 다지는 농부를 보면 날씨만 순조로워도 편할 거라는 생각을 했으나 비 온 뒤의 땅이 굳어진다.

우리 삶의 프로젝트 역시 시련 속에서 견고해진다. 풀이 없으면 누가 호미질을 하겠는가. 잡초가 있어야 풀을 뽑고 북을 돋워주게 되는 것은 쓸모의 여부가 아니라, 불필요한 존재도 야박하게 대할 수 없는 최소한의 예우를 뜻한다. 있으면 안 되지만 없어도 곤란한 필요악의 존재처럼 순조롭지 못한 날씨에 긴장하고 논밭을 돌보면서 풍작을 기할 수 있음을 말하고 싶다.

내 인생의 터에도 수많은 잡초가 들끓을 것이다. 곡식보다 훨씬 무성해지는 게 잡초라는 것은 삶에 그대로 적용된다. 곡식은 애써 가꿔도 벌레가 먹고 가물이 드는데 잡초는 돌보지 않아도 자란다. 곡식을 심고 난 뒤 에워싸듯 올라오는 잡초는 골칫거리지만 퇴비를 생각하면 필요한 요건이다. 잡초와 같은 역경과 시련 때문에 삶도 가끔 윤택해지는 것은 소망이다.

시련으로 원숙해진다 해도 중요한 것은 과감하게 맞서는 의지다. 잡초가 거름이 되는 원천은 강한 생명력이듯 대처할 의지가 없으면 시련도 무의미하다. 밭에서는 누군가가 뽑아 줘야겠지만 우리 삶의 터는 관리 문제다. 좀 더 자라기 전에 뽑아내면 수월하거니와 무성해진다 해도 퇴비를 만들 수 있으니 실망할 게 아니다.

잡초는 한 번 없애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나 겨울이 되면 일단 멈추기는 했다. 반면 우리 삶의 김매기 작업은 끝이 없으니 보다 철저한 단속을 요한다. 잡초를 제거하면서 김을 매게 되고 풍작으로 이어지기는 하나 잘못 뽑다가는 멀쩡한 곡식도 다치듯 시련도 섣불리 대처하다가는 삶의 근간이 허물어질 수 있다. 꿋꿋한 의지로 맞서 나간다 해도 필요 이상 과격한 자세는 금물이라는 뜻이다.

그 다음 무성해진 잡초를 베어 우정 퇴비로 만드는 과정은 살 동안 무성해진 잡념과 갈등 역시 적절히 헤쳐 나가면 높은 인격의 향기를 발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순조로운 가운데 꼴 지워지는 인격도 아름답거니와 대부분 어려움 속에 살게 될 것을 생각하면 적절히 대응하는 게 상책이다. 중요한 것은 또 잡초 속에서 어쩌다 피는 꽃의 경이로움이다. 수많은 꽃 가운데 돋아난 잡초는 거슬리되 힘든 속에서 얻어지는 삶의 향기는 잡초 속의 꽃처럼 아름답다.

한나절이 되었다. 텃논의 농부와 따비밭 할머니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 가뭄과 싸우고 잡초와 씨름하는 걸 보니 농사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 싶다. 잡초가 없어서도 안 되는 필요악의 존재였다면 잡초 같은 어려움도 아우를 수 있어야겠다. 곡식보다 빨리 자라기는 해도 가끔은 퇴비가 되어 풍성한 수확을 가져올 수 있다. 시련도 가끔은 계기가 된다면 그로써 사는 게 훨씬 원만해진다. 삶의 공식은 때로 그렇게 간단한 데서 나온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