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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작약이 비로소 말끔해졌다. 엊그제 내린 비로 허옇게 붙어 있던 꽃잎이 떨어지고 다시금 푸르러졌다. 생각하니 열흘도 넘게 붙어 있었다. 시들다 못해 배배 틀어진 꽃술과 찌글찌글 퇴색해 버린 꽃잎은 작약이었던가 싶을 정도다. 질 때 예쁜 꽃이 있을까마는 비가 한번쯤 왔더라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는 않았을 거다.

처음에는 유달리 산뜻하게 피어서 그런 줄 알았다. 백합과 능소화 동백이 질 때는 별반 곱지 않게 느껴진 것도 예쁘게 피는 꽃일수록 그런 거라고 생각한 결과다. 압화를 만들 때도 빛깔이 연한 풀꽃은 마르면서 선명해지고 모란이나 동백은 너무 진해서 아기자기한 느낌이 덜한 것 같은데 최근 가뭄으로 말라 버린 풀꽃을 보면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자운영이나 제비꽃은 봄꽃의 특징대로 금방 져버려서 그런 기억이 없는데 하늬바람에 시드는 찔레꽃과 여타 풀꽃은 묘한 느낌이었다. 작약같이 송이째 붙어 있는 것보다는 덜하되 다닥다닥 말라 있는 게 여느 때 이미지가 아니다. 따스한 날씨 때문에 성큼 떨어지지 못하는 게 꽃으로서는 얼마나 불명예스러운지 모르겠다. 꽃도 꽃이지만 어떻게 지느냐가 문제라면 마무리는 그만치 중요했다.

어떤 꽃이든 필 즈음에 더 눈길이 가고 질 때까지 예쁘기를 바라는 건 과욕이지만 가끔은 질 때 아름다운 게 있다. 진달래도 끝물에 접어들면 보얀 꽃여울 같고 벚꽃은 눈앞이 아련할 정도다. 같은 꽃이라 해도 꽃샘이다 뭐다 해서 적절히 지는 경우가 많은 걸 보면 봄에 피는 꽃이 예쁜 것도 까닭이 있구나 싶다.

활짝 피어 탄성을 올릴 즈음이면 꽃샘이 강타해 버려 피기도 전에 떨어지곤 했으나 요즈음 지는 꽃처럼 가뭄이 들어 식상하는 일은 드물다. 뭔가 이룰 때 어려움이 닥치는 것 또한 봉오리 질 때처럼 적당히 성취될 때의 마무리 단계도 괜찮다는 뜻이다. 오래 필 때는 아름다움이 격하되듯 좋은 일이 오래 가면 모처럼 이룬 것에 대한 가치도 떨어진다.

꽃이 질 때는 대부분 비바람이 불고 야단스러웠다. 지는 것도 속상한데 날씨까지 약을 올리나 했지만 그래서 아름답다. 가령 모든 꽃이 비도 오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는 가운데 남아 있으면 곤란하다. 우리 역시 뭔가 이루는 데 치중하지만 손을 떼야 할, 꽃으로 말하면 떨어질 시점의 파악도 중요하다. 꽃은 스스로의 조절이 어려우나 봉오리 질 때가 가장 아름답다면 반쯤 피었을 때 질 것을 생각하는 게 더 바람직할 수 있겠다.

열흘 붉은 꽃이 있던가. 제아무리 권세를 뽐내고 명예를 자랑해 봤자 잠깐이고 아름다울 때 떨어질 수 있는 용기를 강조한 성 싶다. 봉오리 질 때가 최고 예쁘다면 열흘도 짧지 않다. 인생 최고의 절정기는 긴 게 아닌데 어렵사리 피었다고 오래 가기를 소원한다면 오늘 본 화단의 작약처럼 이미지가 더러 식상해지기도 한다.

참 예쁘고 소담한 꽃이었던 걸 보면 유감이다. 이제나마 비가 내렸기 망정이지 더 시달릴 뻔했다. 작약이 질 때 보면 어쩌다 비가 오기는 했으나 찔레꽃가뭄이라 하듯 거의 메마른 날씨였다. 봄꽃이 꽃샘과 찬바람 속에서 피기는 해도 질 때 실망하는 일이 없음 또한 다행이다. 순조로운 날씨는 흐드러지게 피는 요인이되 질 때는 더러 그런 해프닝을 초래하는 걸까. 비바람이 뿌려대고 꽃잎을 수장시킨 다음에야 빛 바랜 채 남아 있던 이미지가 말끔히 가셔지는 걸 확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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