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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냉이국을 끓였습니다. 먼저 된장을 삼삼하게 풀어 끓이고 냉이를 콩가루에 묻혀 넣은 뒤 이듬 끓이면 탑탑한 맛이 제법입니다.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무치기도 하는데 어떻게 요리하든 맛이 좋고 향긋한 내음은 가히 최고입니다. 오늘은 또 완연한 봄 날씨였고 냉이국도 먹었으니 진정 봄인가 싶어 마음이 푸근해지는군요.

하지만 냉이를 캐던 날은 추웠습니다. 게다가 어찌나 깊이 박혔는지 한 뿌리 한 뿌리 캘 때마다 힘을 주어 잡아당겨야 했습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겨우내 떨면서 땅 속으로 파고든 것 같아 짠했습니다. 보라색 잎은 또 추워서 질린 듯했거든요. 좀 더 따스해지면 나물 특유의 초록색으로 바뀌는데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바구니에 담으면서 제가 그랬죠.'춥고 힘들다고 엄살을 떨란 말이야. 그래야 꽃샘바람이 잠잠할 텐데 그렇게 멀쩡하면 심술을 부리잖아' 그러자 뒤미처 '그래서는 봄을 만들 수 없어. 대항을 한다 해도 달걀로 바위 치기지만 그래야 겨울을 물리칠 수가 있지'라고 되받는 다부진 소리….

겨우내 그렇게 버티었을 테니 꽃샘바람도 맥이 풀려 물러났을까요. 꽃이 피고 잎 트는 꼴은 절대 못 본다고 온갖 심술을 놓고 폭설을 뿌렸을 텐데 이제 봄을 맞아 저리 도드라졌으니 참으로 황당했을 거예요. 꽃샘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 기세였으니 겨울의 방어진을 뚫고 올라올법했습니다.

하기야 봄에 나오는 것들은 다 그렇게 필사적입니다. 추위가 극성을 떨 때는 봄이 올까 싶었지만 기를 쓰고 쳐드는 냉이와 민들레 등을 보면 안심이 되었습니다. 장정 열이서 도둑 하나를 막아내지 못하듯 꽃샘바람 군단이 봄을 이긴 경우는 한 번도 없습니다. 우여곡절 과정을 통해서 싹을 틔운 까닭에 냉이를 위시한 봄나물이 유독 맛있다고들 하는 것이니까요.

냉이를 캐다 보면 유독 큰 게 나오는데 대부분 돌밭이나 딱딱한 곳에서 자랐습니다. 해동을 전후할 때는 예의 봄비가 내렸고 한 열흘 간 물렁해졌는데도 딱 버티고 있는 걸 보면 대단한 뿌리심입니다. 옆에서 다박다박 얽혀 자란 냉이는 잎사귀 치레라서 허룩하게만 보입니다. 거름이 좋다고 잘 자라는 게 아니듯 나쁜 여건도 잘만 극복하면 오히려 괜찮을 수 있지요.

다음으로 튼튼한 냉이는 동무도 없이 혼자 뿌리박았습니다. 얼마나 밟혔는지 잎은 메말랐어도 잔뿌리 하나 없이 쪽 곧은 게 추운 날씨와 거친 땅에서 강해진 듯 어기차 보입니다. 눈보라 속에서 혼자 외로웠으련만 곧은 뿌리로 또 다른 영역을 구축했습니다. 완고한 겨울 빗장을 뽑을 수 있는 것은 독종이라 할 봄의 뿌리고 깊이 묻혀 있던 초록도 그 바람에 되살아난 겁니다.

돌밭이고 음지라서 더 힘들었을 테지만 겨울을 나야 봄이 되는 것도 냉기를 뒤집어쓴 채 푸르러진 속내를 뜻합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건 양념으로 혹은 고명으로 생각할 뿐 내 삶의 목록에는 넣고 싶지 않았습니다. 독을 이기는 것은 독 외에 없듯이 지독한 운명을 당할 수 있는 건 한 술 더 뜨는 단호한 자세고 결사적일 때 수그러집니다.

나물조차도 모질게 사는데 투정을 부릴 수는 없다는 거죠. 엄살이나 부리다가 끝나면 진정한 삶일 수 없습니다. 바람모지에서도 탐스럽게 자란다면 힘들수록 풍요로운 삶의 모태로 삼아야겠지요. 이른 봄 냉이로 국을 끓이고 무칠 때마다 교훈처럼 새겨두는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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