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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천둥 벌거숭이.

녀석은 아까부터 초조한 기색이었다. 생각처럼 잡히지 않는 게 속상한 듯 몸을 달구더니 어느 순간 잡았다 라고 하는 소리가 났다. 마루 끝에 앉아서 보는 마음이 얼마나 평화로운지 몰랐다. 잡을 만하면 달아나고 나도 괜히 마음을 졸였다. 녀석은 잠자리를 뒤쫓고 나는 녀석의 발길을 따라 다니다가 한나절 만에 잡은 것인데 몇 번 꽁지를 잡아당기고는 그냥 날려 보낸다.

잠자리는 예쁘다. 아련히 코스모스 피는 여름 끝자락. 벼가 익기 시작하면 우리는 참새를 쫓아야 했다. 가을이 수를 놓는 들판에 나서면 잠자리가 춤추듯 날아다닌다. 참새는 뒷전이고 잠자리만 쫓아다녔다. 벼이삭에 앉는가 하면 시냇가 돌막에도 앉는다. 가끔 잡는답시고 추석거리지만 재빠른 잠자리는 약만 올리곤 했다.

특별히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하는 초가을 들판의 잠자리 떼는 풍경이었다. 빨간 고추잠자리의 선명한 빛깔은 추억으로 남을 만치 고왔는데 바로 그 녀석이 세상 무서운 것 없이 날뛴다는 천둥벌거숭이다. 어쩌다 잡으면 바르르 떨리던 투명한 날개. 그것을 보면서 애처로운 마음에 놓아주곤 했다가 바로 그 예쁘장한 고추잠자리가 천둥벌거숭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한여름 어느 때 먹장구름과 함께 천둥이 울고 벼락이 쳤다. 금방 비가 쏟아질 것 같은데 유유히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몇몇 어른이 보았다. 일하다 말고 천둥에 놀라 정자나무에서 혹은 원두막에서 쉬고 있다가 우연히 본 것이 고추잠자리였을까. 겁도 없이 천둥에 날아다니는 붉은 잠자리라고 걱정 끝에 내뱉은 천둥벌거숭이라는 말.

어린이라면 상황은 바뀌었다. 비가 쏟아질 것 같아 피했는데 제 세상이나 만난 듯 돌아다니는 걸 보며 법석을 부렸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라서 천둥이 칠 것도 모르고 날아다니는 게 심각한 상황으로 보이지 않았다. 저희들은 비를 피해 들어왔으니 잠자리보다 낫다고 할 것이나, 천둥벌거숭이라고 부른 어른보다 세상 모르는 건 마찬가지 철부지였으니까.

왜 그렇게 천둥 속을 날아다니는지 모르나, 그 한 살이가 짧기 때문으로 보았다. 수명은 1년이라 해도 물속에서의 유충기가 6개월이다. 일생의 절반을 물속에서 지루하게 견뎠다. 혹은 말 그대로 철부지라서 천둥 벼락 치는 것을 모르기 때문일 수 있으나 거기서 천둥벌거숭이라는 말이 생겼고, 우리 또한 그로써 자연과 삶에의 외경을 배우는 게 아닌지.

지금은 잠자리를 봐도 비행기 같다고 생각한 그 때처럼 동화적이지는 않다. 나마리와 짱아 등 이름이 많은 것도 친숙하다는 의미였건만 천둥벌거숭이라고 했던 어른들은 어릴 적 천둥 치는 날 잠자리를 보았을 것이다. 예쁘고 앙증맞은 잠자리 대신 천둥벌거숭이라는 이름에서 섭리를 생각했겠지. 나 역시 잠자리의 예명이 나마리와 짱아인 줄만 알았다가 뜻밖의 이름을 알고 난 뒤 생각이 많아진 것처럼.

잠자리가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천둥이지만 우리는 제 욕심 차리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고 모함하는 등의 악행도 서슴지 않는다. 천둥을 피하지 못한 잠자리야 혼자 죽는 것으로 끝나겠지만 우리는 천둥보다 두려운 도덕적인 문제로 번진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지만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자초한 재앙은 피하기 어렵다. 잠자리보다 더 한 천둥벌거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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