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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먼 산꼭대기에 잔솔나무가 한껏 푸르다. 첩첩 늘어선 바위가 철옹성같이 완고한데 그 틈에서 참 대견하게 자랐다. 울퉁불퉁 자갈밭에서 가지는 빈약해도 균형 잡힌 모습이 어엿하다. 조금만 비켜갔어도 물 빠짐이 좋고 아늑해 보이는데 참으로 힘들게 크는 성 싶다. 하기야 그래서 분재 소나무처럼 앙바틈한 모습이었을까. 악조건 때문에 오히려 그렇게 자란다는 건 알았겠지만 세월이 훨씬 지난 후였을 거다.

불현듯 바람이 지나간다. 상쾌한 느낌에 절벽을 바라보니 더욱 세차게 부는 듯하다. 높은 가지가 바람을 타듯 아득히 벼랑인 걸 보면 유난히 바람을 타는 자리다. 흙 한 모숨도 귀한 벼랑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거친 바위와 뜨거운 볕 때문에 허구한 날 갈증에 시달렸겠다. 어지간한 나무 같으면 뿌리박기도 힘들었건만 그래서 더 어기차다. 뿌리박은 자리가 최상의 여건임을 알 때까지 오랜 날 눈비에 시달려 왔을 것이다. 생각하면 옷깃이 절로 여미어진다.

언젠가 식물원에서 본 분재 소나무가 떠오른다. 20년 묵었다는데 키가 1m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보통 그 정도 연륜이면 그늘에서 볕을 피할 수도 있겠지 싶어 기분이 묘하다. 하늘 향해 마음껏 자라지는 못했어도 틀어진 가지는 쇠처럼 억세고 촘촘하게 자란 바늘 같은 잎이 얼마나 푸른지 한편으로는 짠하다. 저렇게 자랄 동안의 과정이 눈물겹다. 어렴풋이 소망 같은 게 느껴지는 기분도 용틀임하듯 어렵게 형성된 의지 때문이었을까.

가지를 칠 때마다 철사로 얽어매고 할 동안의 아픔도 꿋꿋이 견디었다. 돌연 태산 같은 힘으로 뿌리박는 서슬에, 자그마한 옹기 화분이 쩍 갈라지기라도 할 것 같은 상상이 지나갔다. 그 정도로 억척스러운 느낌인 것을 보면 바위 끝의 소나무는 자연스럽게 분재가 된 폭이다. 너무 크면 균형이 맞지 않아서 주기적으로 쳐내는데 벼랑이기 때문에 가지를 치거나 구부리지 않아도 천연의 분재로 자랐다.

태풍이 지나갈 때마다 가지가 휘고 꺾이면서 자연스럽게 수형이 다듬어졌겠지. 재목감인 나무도 눈비에 시달리면서 자라지만 더 강한 비바람에 단련되는 까닭에 잔솔나무의 면모는 그렇게 돋보인다. 똑 고르게 자란 나무가 재목으로는 최상이지만 굽어지고 틀어진 분재 나무도 못지않게 감동적이다.

아무려나 순조롭게 크면 재목이 되고 비바람에 시달린다 해도 분재가 된다. 우리 또한 순조롭게 펼치는 꿈도 좋지만 우여곡절이 닥친다 해도 분재가 되는 과정으로 생각을 바꾸면 자기 창조가 된다. 나무가 크면 바람도 모질어지나 어릴 때도 능히 이겨 온 만큼 잎은 더 촘촘해지고 가지도 굵어져 연륜을 자랑하게 되지 않을까. 분재 아닌 분재로 꼴 지워진 모습에서 여건만 탓할 게 아니라는 걸 본다.

어떤 경우든 나무를 키우는 것은 비바람이다. 우리 또한 시련과 운명 속에서 큰다. 비바람을 거부하면 아름드리나무가 될 수 없고 어기찬 분재로는 더구나 힘들다. 특별히 뿌리박아 살 것 같지 않은 자리였기에 더더욱 어기차다. 여건이 좋을 때보다 악조건일 때는 인내가 필요하다.

나도 그렇게 자라리라고 생각했다. 힘들고 번거로운 일상을 가장 먼저 삶의 목록에 끼워 넣어야겠다. 편하고 순조로운 날을 마다할 사람은 물론 없다. 그런 터에 애써 힘든 날을 추구할 것도 아니지만 가끔은 그로써 자신을 시험하는 거다. 어려움을 굳건한 삶의 초석으로 삼을 수 있다면 물리칠 게 아니라는 뭐 그런 생각 때문이다.

다시금 잔솔나무를 본다. 저렇게도 자랄 수 있다는 게 새삼 숙연해진다. 앞으로 비바람에 더 시달릴 테지만 뿌리는 이미 탄탄히 박았다. 잎을 채우고 하늘을 일굴 동안 문제는 비바람이 아니라 그에 꺾이는 나약한 의지다. 운명보다 걸림돌은 적응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일이다. 어린 나무도 절벽 끝에서 분재처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세상 거칠 게 없다. 어떻게 살 것인지 정답이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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