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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빈터에 민들레가 흐드러졌다. 어느새 여름인데 무더기로 핀 꽃이 폭염에 산뜻하니 곱다. 민들레는 당연히 4월의 꽃이다. 진즉에 피었어야 할 게 이제야 만발한 듯 내심 짠하다. 필연 근방의 건축 사무소에서 공사를 하는 바람에 이른 봄 갓 깨어난 민들레가 자재에 깔려 오랜 날 홍역을 치렀다. 그러다가 얼마 후 자재가 옮겨지면서 일제히 피어났을 것 같은데….

언니네 집에서 바라 본 풍경은 그렇게 특이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동기간들과 개떡을 쪄먹는다. 초봄에 뜯어 데쳐서 얼려놓고 쓰는데 반죽을 하고 보니 쑥이 약간 부족했다. 아무리 둘러 봐도 마땅한 데가 없다. 야들야들 올라 온 과수원의 쑥은 제초제를 뿌려도 몇 차례는 뿌렸을 테고 밭둑에는 보나마나 너무 쇠었다. 하릴없이 그냥 돌아오던 중 야적장 근처의 움쑥을 보았다. 부랴부랴 뜯어 반죽에 보탠 것이 남다른 향으로 맛을 돋웠다.

공사장 너머에 밭 한 두럭이 있고 빈 터의 끝이 그 밭둑이다. 밭주인은 말 그대로 쑥대처럼 자라는 쑥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을 테고 낫으로 베어내는 바람에 초봄에나 있을 연한 쑥이 지천으로 자랐다. 7월도 중순에 어쩜 이런 쑥이 다 있나 싶을 정도다. 봄에는 연해도 가늘어서 뜯기가 만만치 않은데 오늘 움쑥은 통통하고 연해서 한결 수월했다.

움쑥이라 그런지 반죽을 할 때도 차지다. 갓 쪄 내서 펴 놓으면 쑥 내가 집안에 가득 퍼진다. 참기름을 바른 뒤 잠깐 식혀서 먹는데 쑥 향기 때문에 참기름 냄새도 잠깐 무색해진다. 쑥이 없을 거라고 단념했다면 독특한 향기를 맛볼 수 있었을까. 반죽이 약간 모자라기는 했으나 그냥 해도 무리는 없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좀 더 보탠 것이 각별한 맛으로 됐다. 더구나 축축이 낫질을 해대는 가운데서 연하고 향긋한 쑥으로 자란 새 순은 대견하기까지 했다. 제 철이 지난 뒤에 핀 민들레 또한 인상적이었던 것처럼.

4월 초 밭둑이 노랗게 핀 민들레는 당연히 고왔으나 지금 이 철 적게 핀 민들레도 나름 예쁘다. 주변은 또 공사 현장이라 온통 지저분하고 어수선해도 그 때문인지 훨씬 더 곱게 보인다. 제 철은 아니어도 버금가는 뭔가는 있고 그런대로 괜찮았던 것처럼. 메뚜기도 한철이라지만 시기를 놓쳤다고 손 놓을 건 아니다. 메뚜기가 한철인 그 때만은 어림없지만 흔할 때는 가당치 않았을 운치가 혹간 있다.

살다 보면 잘려나가는 쑥처럼 또는 민들레가 건축 자재에 깔리듯 하는 상황이 속출한다. 모든 게 끝났다고 절망하지만 기다리다 보면 민들레와 쑥처럼 언젠가 다시 일어난다. 뭔가를 잃었다 해도 싹만 잘려나간 것으로 생각하면 희망은 보인다. 싹만 잘려나가는 줄 모르고 포기하는 것보다 두려운 게 있을까. 건축자재에 파묻혀 있다가 치워지면서 핀 민들레는 뿌리가 남아 있고 살고자만 하면 결코 죽지 않는다는 집념을 나타낸다.
무더기로 피었다고는 해도 솔직히 여남은 포기였는데 쓰레기에 뒤덮인 공터라서 더 푸짐하게 보였다. 움쑥은 또 봄에 나올 때의 향 같지 않아도 얼마나 연하고 통통했던가. 한 물 갔을지언정 이듬으로 거둘 수 있다. 시기를 놓친다 해도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민들레와 쑥이 힘들었던 시절은 나중에 생각하니 전성기였다. 전성기란 생애 최고의 영광이 아닌 어려움 속에서도 앞을 향해 나가는 과정이다. 얼마나 좋은 여건인가보다는 나쁜 여건이지만 어떻게 반전시키느냐의 문제다. 좋고 나쁜 걸 따지기 전에 적응도를 높이는 거다. 힘들어도 내일을 생각하면 구름 속 태양까지 볼 수 있는 안목이 자란다. 먹구름이 지나간 뒤에는 언제나 푸른 하늘이 빛난다는 것, 햇살은 눈부시지만 구름을 뚫고 나오는 태양은 더더욱 강렬하다는 것을 새기고 싶다. 악조건은 때로 활력소가 된다는 생각에 오늘 하루가 무척 희망적이던 기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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