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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앞개울의 산벚나무가 통통 물이 올랐다. 한겨울에는 천연 죽은 나무였다가 따스한 봄볕에 거짓말처럼 살아나곤 했다. 봄기운은 곳곳에 가득한데 이제 막 도드라지는 꽃망울을 보니 마음이 푸근하다. 절기에 맞춰 꽃이 피고 잎이 튼다고 보기에는 유달리 신비한 느낌이었다.

엊그제 자반고등어를 먹었다. 여느 때라면 생선조림을 하지만 자반고등어라서 특별히 생선튀김을 하기로 했다. 하기야 튀김이든 조림이든 자반고등어가 기름이 잘 먹고 양념도 골고루 밴다. 생 고등어는 잘 녹지도 않거니와 기름이 튀고 생짜로 얼려 둔 거라 맛이 푸석푸석하다. 자반고등어보다 감칠 맛은 있는데 요리하기가 약간은 번거롭다. 똑같이 냉동실에 들어가도 간 고등어는 살얼음만 털면 간단하나, 생 고등어는 물기가 많아서 들러붙는 등 탈이 많은 것이다.

청미천의 산벚나무 역시 그렇게 겨울을 났다. 웬만치 물을 내린 상태라 얼음이 풀리면서 싹을 틔웠겠지만 물을 내리기 시작하는 건 정작 단풍이 들 즈음이다. 이슬이 내릴 경우에는 비단 위에 꽃이라고 할 만치 예쁘고 서리까지 맞으면 꽃보다 고운 단풍이었으나 끝내는 겨울을 나기 위한 과정이었다. 눈물겨운 일이다.

물기가 남으면 온통 얼어빠지는 섭리를 산벚나무는 진즉에 알았을까. 얼지 않는 방법이기는 하나 물기가 없으면 죽을지 모른다고 조금만 내렸다가 추워 떨면서 이듬해에는 좀 더 많이 내리는 등 조금씩 단련되었을 것이다. 최소치만 남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할 동안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싹을 틔우고 잎을 달아 초록을 자랑하게 된 곡절이 그려진다고나 할지.

우리 역시 아까운 마음으로 뭔가 내려놓지 못한다면 냉해를 입는 나무와 다를 게 없다. 남아 있는 물기로 단풍이 예쁘지 않고 칙칙해질 수 있다면 생각을 바꿀 일이다. 하루하루 쌀쌀해지면서 물기는 거의 다 마르고 단풍은 그럴 때가 최고 아름다웠다. 욕심과 명예 때문에 내려놓지 못할 경우 집착이 되고 말년까지 추해질 수 있다. 젖은 채로든 마른 채로든 마찬가지나 단풍으로 물기가 마르고 그러다가 겨울과 함께 살짝 얼면서 이듬해 싹을 틔울 수 있다는 건 과학적 사실을 떠나 경이롭기까지 했다.

물기를 빼는 것도 부족해서 서리까지 감수해 왔을 겨울나무의 자세를 배우고 싶다. 예쁘게 단풍 들다가 낙엽으로 지는 것 또한 이유가 있었다. 나무조차도 물기를 제거하면서 겨울을 준비하는데 하물며 경건한 삶의 노정이다. 물기가 마르는 식으로 뭔가 침체될지언정 그럴 때마다 더 나은 내일을 기약하며 살 수 있어야겠다. 당장은 쓸쓸하고 허전하겠지만 과감히 내려놓을 때라야 소정의 목표를 이루게 된다.

갈등도 물론 있었을 것이다. 늦가을이 되면서 처음에는 조금씩 내렸을 테지. 그러다가 어느 해는 유달리 추워지는 등 뜻밖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난해보다 더 많이 내리는 등 특이한 삶의 공식을 대입하고 나름 풀어나갔을 것이다. 무사히 겨울을 나고 봄에 더 많은 꽃을 피우기 위해서라도 용단이 필요했을 테니까.

얼마 후에는 잎이 너울해지고 수많은 꽃으로 뒤덮이겠지. 벚나무 오솔길은 해마다 봄을 맞아 분홍 꽃노을에 덮이곤 했다. 눈이 보얗도록 아름다운 정경이야말로 겨울이 되기 전부터 물을 내리는 용기와 결단에서 비롯되었다. 사는 것도 때로 그렇게 간단명료한 개념이었다. 우리 삶 또한 산벚나무의 지혜를 터득하면서 해마다 그 한 살이를 접목하는 과정이었다. 남김없이 내려야 이듬 해 봄이 푸르다는 걸 거침없이 싹 틔우는 산벚나무를 보면서 깨우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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