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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한 임금에게 옷감 장수가 찾아왔다. 아주 예쁜 옷을 짤 수 있다면서 거짓말쟁이 눈에는 띄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임금은 신기한 옷을 입게 되었다고 쾌히 수락했다. 하루는 얼마나 짰는지 궁금해서 찾아갔더니 아무것도 없는 빈 베틀이다. 속으로는 뜨끔했으나 천연스럽게 칭찬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찝찝한 마음에 측근을 시켜 다녀오도록 했다, 그도 역시 놀랐으나 똑같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옷이 완성되었다는 전갈을 받고 임금은 행차를 하게 되었다. 시중드는 사람들은 옷도 아닌 옷을 입히는 체했다. 구경나온 사람들도 훌륭한 옷이라고 입을 모았다. 얼마 후 구경 나온 어린이 하나가 임금님은 벌거벗었다고 외쳤다. 소문은 금방 퍼졌으나 임금은 못 들은 체했다. 보이지 않는 옷을 보이는 체 받들고 가는 행렬도 그대로 이어졌다.

어릴 때 참 재미있게 읽은 동화다. 우연한 기회에 다시 보니 거짓부렁 옷을 입고 가는 거짓말 행차가 선하다. 말만 하면 본색이 드러날 판인데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 얼마나 우매한지 알면 자기 위선에서 벗어날 텐데 쉽지는 않다.

임금은 얼마나 약이 올랐을까. 벌을 주자니 녀석들은 행차가 시작되자마자 줄행랑을 놓았다. 우물쭈물할 동안 망신살이 뻗쳤다. 임금 휘하 수많은 군중 역시도 남들은 다 보일 거라고 끌탕을 했을 자기기만 케이스였다.

보이지 않는 옷을 보인다고 한 임금은 나약한 인간의 상징일 수 있다. 우선은 빈 베틀인 줄 알았을 때부터 솔직히 굴어야 했다. 거짓말쟁이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으니 반성하고 뉘우쳤으면 될 걸 옷도 아닌 옷을 입고 거짓 쇼를 부렸다. 모두가 합세한 거짓 행렬도 볼만했겠다. 작은 거짓을 덮기 위한 더 큰 거짓말이다. 사기극이라도 진실을 떠볼 기회였는데 다들 놓쳤다.

옷이 보이지 않으면 거짓말쟁이라는 엄포에 놀랐겠지만 결과야 어찌되었든 진실을 말할 수 있으면 그게 용기이다. 진실을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거짓을 강요하는 일도 많다. 비약하면 '나도 딴에는 정직한 사람인데 옷이 보이지 않는단 말야? 그럴 리 없어. 이건 가짜라고' 하면서 우길 수 있는 배짱도 필요하다.

남들이 알면 어쩌나 두렵다고 엉너리치면서 진짜 거짓말쟁이가 된 것과는 천양지차이다. 거짓말쟁이가 될지언정 사실대로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아쉽다. 사기행각은 나쁘지만 엉거주춤 망설였던 사람도 잘못은 있다. 진실은 확실히 말할 수 있을 때 나온다. 임금님은 벌거벗었다고 외친 어린이 말고는 모두가 망설였다.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참이면 말을 한 사람도 거짓말쟁이이므로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또한 그 말이 거짓이면 크레타인은 참말만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모두들 거짓말쟁이가 된다. 뭐가 뭔지 알 수 없고 뒤죽박죽이다.

두 사람 옷감장수의 제안대로라면 거짓말쟁이가 될 수밖에 없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으면 그게 진실이다. 우리가 짜는 옷감이 보이지 않으면 너희는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선포했다. 그러나 옷감은 짜지 않고 빈 베틀인데 보인다면 또한 거짓말쟁이라고 함정을 팠다. 중요한 것은 속셈이 드러나지 않는 나중 말이었다. 참과 진실에도 보이지 않는 배후가 있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속내는 더 큰 거짓을 표방한다.

진실과 거짓은 믿는 바 소신의 차이였다. 거짓말쟁이는 볼 수 없다는 선언에도 확실히 말할 수 있을 때라야 진실이 나온다. 진실은 끝까지 주장하게 되지만 거짓은 흐지부지된다. 가려내는 게 중요하다.

천진한 어린이처럼 본 대로 말하기가 쉽지는 않다.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거짓인 줄 알고도 체면 때문에 말하지 않으면 타성이 되고 만다. 천진한 어린이의 말처럼 모두가 정말 그렇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듯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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