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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아무래도 나는 가난과 인연이 많은 것일까.

우선은 생김부터가 재물과는 동떨어지게 타고 났다. 얼굴이 작은데다가 살피듬이 적다. 입이 커야 먹을 게 많다는데 그마저도 작은 편이다. 요모조모 뜯어 봐도 뭔가 붙을 만한 구석은 없어 보인다.

그런 생각을 굳힌 계기는 또 있었다. 아주 어릴 적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책을 들었다 하면 굿을 해도 돌아보지 않는다. 어느 겨를에 돈이 붙겠나 싶은 생각을 해 왔다.

가난을 의식한 것이 그렇듯 오래 전부터였다면 쉽게 떨칠 수는 없는 성 싶다. 남들은 잘 살기를 원한다지만 나는 욕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것은 생활력이 없어 두렵고 남에게 꾸러 가지 않을 정도면 충분하다. 원하는 게 있다면 가끔 책 한 권과 옷 한 벌 사 입을 정도의 호사이다. 더 이상은 분수에 맞지도 않거니와 해당 사항이 아님을 아는 까닭이다.

그 옷이라는 것도 꼭 맞아야 했다. 밥을 많이 먹거나 하면 불편할 정도로 타이트한 게 좋다. 도대체가 여분이 싫다. 꽃도 조촐하고 수수한 게 더 끌린다. 모란이니 작약보다는 앙상하게 자란 달맞이꽃과 패랭이꽃 등을 좋아한다. 국화만 해도 잔잔한 소국이 마음에 들었으니 이것도 가난하게 살라는 뜻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기가 죽거나 하진 않는다. 가난할수록 기와집 짓는다고 그런 속에서도 오히려 자신을 갈고 닦을 수 있다.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기가 잘 살면서 교만하지 않기보다 어렵다는 차원도 지침으로 삼고 싶다. 똑같은 가난이라도 이름 고운 가난에 품격을 지킬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가난하게 살면 불편한 건 사실이다. 차가 없는 나는 외출을 하려 해도 번거로울 때가 많다. 하지만 그 마음은 잠깐이다. 걸어 다니다 보면 시멘트 사이나 지붕을 뚫고 나오는 잡초가 눈에 띄기도 하고 여름이면 하루하루 달라지는 초록이 느껴지기도 한다. 자동차로 갈 때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계절의 변화가 걸어갈 때마다 들어오면서 삶의 윤활유 구실을 한다.

가난은 핑계거리가 되기 쉽다. 쌀광에서 인심이 나는 건 사실이지만 중요한 건 용기를 돋워주는 말이다. 말은 훈훈한 가슴에서 나오고 가슴은 또 가난한 삶에서 더워진다. 배부를 때보다는 곤궁할 때 느끼는 경이가 더욱 새롭다. 똑같은 별이고 하늘인데도 힘들 때 아름답게 보이는 건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가난의 본질을 드러낸다. 재물과 인격이 병행되면 좋겠지만 어쩌다 별개의 차원이기도 했으므로.

가난할수록 여유가 많아진다고 볼 때 고상한 가난은 독보의 경지일 수밖에 없다. 욕심이라는 것도 돈이 있을 때 생기고 적을 때보다는 많을 때 가중된다. 아예 없을 때보다는 웬만치 생기면 좀 더 채우고 싶은 마음에 동동거리게 되고 자칫 경거망동하게 된다. 그럴 바엔 아예 곁눈질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나를 따르지 않는 이상 내가 돈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소신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책을 보고 공부하는 걸 더 좋아한다. 가끔 공부하듯이 돈에 집착했더라면 꽤나 부자가 되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다 감동적인 글귀를 보면 그 마음은 거짓말같이 사라진다. 불편해도 힘들지는 않은 속에서 조촐한 삶을 살 수 있으면 바랄 게 없지 싶다.

앞으로도 나는 가난하게 살 것 같다. 그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할지 애매하다면 어떤 사람보다는 넉넉하게 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천성을 고치지 않는 한 더 곤궁해질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여유로운 마음과 끌밋한 자세를 유지한다면 문제될 건 없다. 명주보다 고운 비단 가난 속에서 명주처럼 질긴 삶이 창출된다. 혹 불편한 게 있을지언정 명주보다 고운 비단가난이라면 감히 추구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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