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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햇살이 노곤하다. 산자락 과수원에 두드러기마냥 번진 꽃노을. 싱그러운 풀내음 속에 얼핏 거름을 져 나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구수한 흙냄새와 함께 어릴 적 두엄자리에서 뭉글뭉글 피어오르던 거름냄새. 냇물 소리까지 지줄지줄 어우러지니 괜히 어깨가 들썩이고 발걸음이 가볍다. 봄 한 자락을 즈려밟는 것 같은 그 기분, 바닥에는 수많은 풀꽃이 어우러지고 개울가 언덕에는 조팝나무가 하얗게 웃고 있으니 흥이 날 수밖에 없고 문득 아리랑이 떠오른 배경이다.

아리랑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고샅길을 갈 동안도 그리 흥겨워지니 이래서 지역마다 특유의 민요가 나온 성 싶다. 오래 전 이 마을에 살았을 한 사람 나무꾼이 떠오른 것이다. 언젠가 나무를 해 지고 내려오다가 봄꽃에 취해 얼핏 지게장단을 맞추었겠지. 나무를 할 때도 그럴진대 논밭에서 일할 때는 더 할 나위가 없었겠지. 나무꾼이며 농사꾼 모두 일하는 틈틈 혹은 새참을 먹을 때 자작곡으로 부르던 것이 지방마다 특유의 민요로 전해져 오지 않았을까.

언문도 모를 텐데 무슨 가락을 알까마는 그리고 신명 좋은 사람 또한 어쩌다 한 둘이겠지만 소절소절 이어부르며 전해졌을 아리랑, 직역하면 我利郞 즉'나는 순리대로 가는 남자'다. 제왕이 아리랑 하면"나는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 바른 정치로 백성을 평안하게 할"거라는 야심을 드러낸다. 농사꾼은 또"나는 농사를 지어 모두를 먹이는 사람"이다. 엄청난 자부심이다. 제왕은 그럴 수 있으나 농사꾼으로서는 대단한 호기다. 아리랑을 대입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당당해지는 걸까.

넋두리 같은 가락은 늘 향수적이고 애잔한데 가끔은 일에 탄력을 주기도 한다. 모내기할 때 부르는 이앙가만 해도 줄을 맞춰 심어야 되는 걸 보면 그럴법하다. 지금과는 달리 손으로 모를 꽂던 그 당시 한 사람이 가락을 돋우면 리듬에 맞추게 되고 줄을 넘길 때도 간격이 일정해질 테니 거름을 주거나 논을 훔칠 때도 편하다. 농사일 뿐 아니라 사는 것은 모두 힘들고 그럴 때 누군가는 홧김에 타령을 읊조리고 푸념 섞어 내뱉은 말에 가락을 싣다 보면 걱정도 사라질 테니 슬프고 외로울수록 마음이 가라앉는 묘한 아리랑.

모를 심을 때의 노래가 아리랑은 아니었으되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랑朗은 또 남자를 뜻하지만 지금은 모두에게 적용될 것이다. 아리랑은 모든 사람의 노래였으되 곡절과 애환 또한 제각각이다. 대략 3000여 곡 정도의 노래가 고을고을 지역마다 다른 중에도"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고 하는 후렴이 반복되는 건 내남없이 똑같은 아픔을 의미하는 것 같다.

특별히 아리랑 고개라고 했지만 소재는 불투명하다. 지도에도 없는 고개였으나 그것은 또 우리나라 전역 어디고 있다는 뜻. 산마루 어디쯤 봉긋한 언덕이 나오면 바로 거기였을까. 속칭 무슨 무슨 고개라고 알려진 것도 많으나 왜 그런지 야트막한 고개 언덕을 지칭할 것 같은 느낌. 아리랑의 아我 또한 제왕에서부터 밭 가는 농사꾼과 세상 흔한 갑남을녀가 들어가고 리理가 섭리를 표방한다면 이름 없는 필부의 삶에 치중할 테니 자부심은 강할 수밖에. 제왕의 평생이든 필부의 일생이든 마찬가지일 테니까.

문득 저만치 밀려드는 어스름, 동구 밖 지나 멀리 노을이 설핏하다. 저기 저녁 해야말로 산굽이 물들이며 모든 사람들의 애환을 담아둔 채 허구한 날 지고 떠올랐겠지. 먼 산날망 골짜기며 언덕이 끝내는 아련한 고개로 이어지듯. 아울러 그렇게 뻗어나간 산줄기야말로 고샅고샅 고을고을에 거대한 풍경을 드러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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