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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잠이 오지 않는다. 불을 끄고 누운 채 말똥말똥 천장만 보고 있는데도 지루하지는 않다. 세상은 암흑에 묻혀 있지만 그 와중에도 벽시계는 똑딱똑딱 여전히 잘 가고 있다. 돌아보니 신년 초 계유년 단상을 쓰면서 설레던 게 엊그제 같은데 2월도 하순에 접어들었다. 가끔, 세월이 유수보다 더 빠르다는 걸 실감하는 때다. 물은 겨울이면 얼기도 하고 여름에는 가물이 들기도 하지만 세월은 꽃 피는 봄이라고 더디 가거나 추운 겨울이라고 속히 가지 않는다. 꿈같은 시기든 어려운 시절이든 그저 여일하게 흐를 뿐이다.

어둠 속에서 모두는 정지된 것 같아도 누에가 꿈틀거리듯 움직이는 시간의 곡예가 그런 것일까 싶다. 오래 전 거실의 책장에 있던 모래시계의 이미지가 그랬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길쭉하고 투명했던 유리병이 눈에 선하다. 바라보고 있으면 두 시간은 잠깐 새 지나갔었지. 모래가 떨어지려면 정확하게 5분이 걸렸는데 기울기가 뒤집히고 수평이 무너지면서 또 다른 시간이 만들어진다. 새로운 시간의 차입이 아니라 묻힌 걸 재생한다. 과거를 돌아보며 사는 우리와 흡사한 느낌이었다.

모래가 시간을 파묻기 시작한 경로를 본다. 산골짜기에 굴러 있던 바위는 바람에 줄곧 시달렸다. 급류에 휩쓸리고 둥글어지다가 모래 알갱이로 부서지듯 나도 세월의 물살에 깎여 지금에 이르렀다. 바윗돌에서 자갈과 조약돌에서 모래로 바뀔 동안의 세월처럼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시간도 이끼로 덮였다.

어느 때 지루해지면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기도 하는데 그도 잠깐 모래가 다시금 모두 떨어지려면 다시 또 5분이 걸리곤 했다. 우리 지루하게 생각하든 말든 일정한 시점이 되어야 나아가는 시간을 그 때 알았다. 가는 데마다 깃이 떨어지는 새처럼 기억을 묻어 버린 모래시계도 기울기를 첨부하며 시간을 베낀다. 잘록한 부분을 중심으로 오늘과 내일이 함께 자라듯 그렇게.

결국 5분을 기점으로 시간을 만들어내지만 잠시 전에 보았던 그 5분의 재현일 수 있다. 오늘 새롭게 맞이한 하루 역시 지나간 어제의 잔해라고 생각하면 어제니 오늘에 연연할 건 아니다. 나를 거쳐 간 시간도 과거의 복원이라는 구실로 자주 기울어지곤 했다. 오늘은 힘들지만 어제로 거슬러가면 소망을 품고 바라보던 내일이었다. 그나마 오늘로 되면서 시들해졌어도 하루가 지나면 추억이라는 애틋한 시간으로 바뀐다. 수마석에서 오랜 날 거칠 동안 자잘한 알갱이가 되어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내는 모래알처럼.

수마석에서 조약돌, 모래알로 부서질 동안의 시간은 추정하기 힘든 것처럼 마음속 시간의 방황도 곡절이 많았다. 일단 커다란 바위가 돌이나 자갈로 쪼개질 동안은 시일이 오래 걸리지 않으나 모래알로 바뀔 때는 오래 걸린다. 그렇더라도 지루한 시간의 테두리 속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희망에 찬 내일을 설계하며 지루하게 느껴지는 거리를 좁히는 것도 지혜다. 시간은 시절과 상황에 관계없이 흐른다고 했지만 이따금 지루해질 때라도 과거의 추억과 미래의 설계 같은 것으로 허점을 메꾸게 된다.

지금도 그 때의 모래시계가 생각난다. 언제 치워졌는지 눈에 띄지 않았건만 이따금 잘디잔 모래가 흩어지는 기척이 들리곤 했다. 언제 어디서든 여전히 흐르는 시간의 본체.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되, 과거는 영원히 정지하고 있는 속내를 돌아보곤 한다. 모래 속에 파묻힌 시간조차도 기억을 끄집어내며 들썩이던 것처럼 멀어진 기억도 가끔 머릿속을 맴돌며 추억의 강을 에둘러간다. 시간은 유수보다 빠르지만 그래서 모래시계의 기억이 더 애틋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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