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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06.28 14:53:09
  • 최종수정2016.06.28 14:53:09

이정희

수필가

모처럼 집들이에 초대를 받았다. 거실만 해도 스무 평이 넘었다. 세금 때문에 100평에서 한 평 모자란 99평으로 지었다는데 무척 웅장하다. 넓은 거실은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가득 차 있건만 천정이 높아서인지 아늑한 느낌이 덜하다. 나 어릴 적 살던, 자운영 꽃이 만발하고 탱자나무로 울을 친 토담집이 더 푸근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냇가에는 논고둥이 바글바글했다. 올망졸망한 것들이 논물에 둥둥 떠 가곤 했다. 우렁각시가 떠오른다. 밟기만 해도 깨질 것 같았으나 그 집에도 볕이 들고 달빛이 휘감겼다. 옛날 한 노총각이 저물어 집에 와 보니 하얀 쌀밥에 된장찌개가 차려져 있었다지. 시장한 김에 먹기는 했다마는 하루 이틀 사흘 계속되다 보니 의아할 밖에.

괴이쩍은 마음에 지켜보기로 했다. 물항아리에서 웬 여자가 나와 청소를 하고 반찬을 만든다. 어느 날 일에 지쳐 쉬면서 "이 밭을 갈면 누구랑 먹고 사나"라고 푸념했다가 "나랑 같이 살지요"라는 소리에 본즉 우렁이가 있었다지. 잡아 와서 항아리에 넣은 게 각시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토담집이라 가능한 얘기였을까. 가령 그 스토리가 최고급 아파트인 '타워 팰리스'같은 데서 벌어졌다면 누가 봐도 믿기지 않는다. 그리 높은 집, 더구나 온통 세련된 주방기구 속에 물항아리가 있을 리 없고 닳고 닳은 사람들 역시 우렁각시 따위는 믿지도 않는다.

그런 걸 생각하면 구순하게 살던 우렁가족은 이채롭다. 몰래 몰래 집안을 치우고 밥상을 차리다가 들켜버렸지만 우렁총각이 나간 뒤의 정경이 잡힐 듯하다. 텃밭을 일구면서 물을 주다가 난데없는 물벼락에 혼비백산 몰려나오는 개미도 보았다. 물 한 바가지에도 홍수가 날 만치 자그마한 집을 보며 흙벽돌집이나마 궁궐처럼 여기며 살았을 테지.

이맘 때가 되면 우렁이를 자주 삶아 먹었다. 호박씨 까서 한입에 넣듯이 온종일 꺼내도 표가 나지 않았으나 우리는 참을성 있게 꺼내먹었다. 요즈음 논고둥 같은 골뱅이는 너덧 개만 파내도 탕기로 가득이라 먹을 속은 있어도 배틀한 맛이 덜하고 오래 파낼 수 있는 인내심은 필요치 않다. 참을성은 성격이되 집 자체가 삶인 서민들에게 우렁각시는 그나마 친근하다.

집안에 파묻히다 보면 '우물 속 개구리' 안목으로 좁혀질 것이나 거미집과 우렁이의 자그마한 집도 우주라면 때로 바다에 버금갈 수 있다. 우물을 세상 전부로 보는 게 아닌, 잠겨 있는 하늘에서 달을 보고 별을 세는 운치를 말하고 싶다. 가령 조각달일 때 끈만 매면 두레박이고 그게 하늘 바다 쪽배라면 얼마나 여유로운 삶이 될는지.

우렁각시의 일상은 어떠했을까. 빨래를 널 때도 줄에는 거미집이 다닥다닥했다. 뜰에 핀 꽃 한 송이를 보고도 여름내 울던 천둥번개 소리를 헤아릴 테지. 옹색할지언정 문창호지 틈으로도 온 마당이 보이고 높바람이 들이친다. 솔숲과 산자락은 울타리가 되고 등불 대신 별이 빛나고 달이 비춘다. 아주 작은 집에서 보는 우주의 단면이다.

어릴 적 그 시냇가는 논고둥으로 초록 물살이 되곤 하였지. 무심코 밟아도 깨질 것 같았으나 그리운 이름처럼 불러본 기억은 애틋하다. 자그마한 집에서 벌어지던 온갖 추억이 클로즈업되면서 작아도 작지 않은 행복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우렁각시는 아니어도 작은 데서 오는 행복에 길들여지다 보면 사는 게 훨씬 수월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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