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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봄이 왔다. 칙칙하게 흐르던 개울도 재깔재깔 노래 부른다. 군데군데 헤엄치는 물오리가 보이고 돌막에 부딪치면서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 물에도 봄빛이 들었던 걸까. 코로나19 때문에 어수선한 중에도 절기는 찾아왔다. 물가에는 바싹 마른 갈대가 어우러졌고 버들까지 푸르러졌다.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꽃여울로 흐르겠지.

물은 다양한 움직임으로 계절 감각을 연출한다. 가령 요즈음 같은 초봄의 풍경은 메마른 중에도 산뜻하다. 장마철에는 흙탕물로 뒤집어지다가 가을에는 참빗질이나 한 듯 빤질빤질했다. 가랑비 뿌릴 때도 얼레빗으로 넘긴 듯 어글어글하더니 단풍이 지고 철새가 드나들 즈음에는 그믐달마냥 새치름했다.

밭고랑 켤 때 흙덩이를 부숴 명주이불처럼 고르듯 물이 얼 것을 대비해서 엉성한 자리를 가라앉히며 매만지는 것 같다. 그 다음 추워지면서 두껍게 얼음 천장을 해 붙이고 삼동을 나곤 했다. 언 땅을 뚫고 나오는 보리 싹과 냉이 등은 그래서 푸르렀을까.

올해는 별반 춥지 않아서 그렇지 이른 봄 나물도 냉기 때문에 맛있었다고 생각될 만치 차가웠다. 얼음이 풀리고 난 뒤 물 가의 풍경은 썰렁했지만 지금 물오리 두 마리가 헤엄치는 모습은 꽃샘추위 중에도 화사했다.

가끔 보면 드나드는 새들까지 패가 갈린다. 아기자기 산새가 날아들 때는 꽃 피고 새 우는 봄 그대로다. 초여름 신록을 담을 때는 물도 플라타너스 우듬지가 보이도록 싱그럽다. 작고 귀여운 만큼 시퍼런 물위에서의 자맥질은 가당치 않다. 초겨울 물새는 뚝심이 있고 억세 보여도 그런대로 푸근하다. 드문드문 깨진 얼음을 배경으로 놀았기 때문이다.

구름도 철철 바뀐다. 봄에는 황사에 꽃샘추위로 어수선했다. 여름 하늘의 구름은 잔물결 하나하나를 일으키듯 섬세해진다. 더위가 시작되면 목화솜처럼 풍성하고 얼마 후에는 먹장구름에 덮이면서 바람까지 설쳐댄다. 뒤미처 초가을에는 새털구름이 진을 치기 시작한다. 백로와 해오라기가 하늘 가장귀를 폭폭 수놓을 때는 흩어 뿌린 듯 고왔다. 가으내 푸르렀던 하늘도 단풍 시즌에는 잿빛으로 가라앉고 철새가 오가는 길목으로 바뀐다.

절기에 맞춰 뜨는 셈이다. 장마철이라면 명주이불 같은 구름은 겉돌 테고 폭풍이 지나갈 때는 풀 먹인 듯 화사한 새털구름은 생뚱맞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초가을 구름이 겨울하늘 드리워지면 허구한 날 추워 떨지 않을까. 따스할 때는 얇은 옷을 입고 썰렁한 날은 바람막이 휘장을 치고 방어한다.

바람도 계절풍이다. 봄에는 약을 올리듯 살랑대는 샛바람이 있다. 꽃은 피었어도 못자리 때부터 벼르는 기세는 어마어마했다. 비닐 덮개가 날아가고 가건물 등은 형체도 없이 분해된다. 장마가 되면 축축한 마파람에 곡식이 우긋해지고 가을 하늬바람은 곡식을 단단히 영글게 한다. 뒤미처 겨울이면 높바람이 파고든다. 녀석의 별명은 된바람, 겨울나무를 죄다 악기로 만드는 주범이다. 동짓달 내 엄청난 눈이 쌓이고 삭풍이 몰아치면서 봄을 준비했다.

물과 구름과 바람의 변화도 우리들 속내와 비슷하다. 잔물결이 있는가 하면 사나운 먹장구름에 시달리듯 곡절도 많고 사연도 많다. 한 가지 모습은 단조롭기 때문에 풍경도 골고루 다양한 거다. 우리 꽃처럼 예쁜 구름을 좋아하지만 먹장구름이 아니면 비도 오지 못한다. 소망은 곧, 아무리 불행도 일단 한걸음 물러날 때 보인다.

산들바람도 좋지만 폭풍도 지나가야 깨끗해지듯 곡절이 아니면 살 동안의 깨우침은 바랄 수 없다. 바람도 구름도 참 다양했으나 그래서 사철 풍경을 자랑한다. 누군가는 또 그랬다. 인생은 슬픔과 기쁨으로 짜는 옷감이라고 했으니 먹구름이 있어야 푸른 하늘의 진가를 안다. 고난보다 최상의 교육은 없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오직 고난의 오솔길 뿐이다. 겨울이 아니면 봄 느낌도 각별하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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