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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겨울나무를 본 것은 숲 속 어름을 지날 때였다. 12월도 딱 하루 남은 오늘 눈보라 치는 언덕에서 앙상한 가지로 바람을 맞고 있다. 겨울만 되면 허허별판에서 해마다 그런 모습이었을 텐데 새삼 눈에 띄었던 거다.

참으로 이상한 게 나는 그 때 눈길에 난 발자국을 따라가는 중이었다. 기슭을 돌아가니 올라간 자국은 있는데 돌아온 자취가 없었다. 잠깐 당혹스러웠다가 보이지는 않아도 꿈으로 이어졌을 거라고 마음을 접은 채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 길 끝에서 만난 겨울나무의 환상 때문에 지금 이렇게 눈물겨운 일대기를 적는지 모르겠다.

가끔 그렇게 바람교향곡을 듣는다. 언제부턴가 나도 내 안에 겨울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앙상한 멜로디가 기억의 후미를 돌아갈 때 우듬지에서는 휘파람 같은 소리가 떠돌았다. 봄 여름 가을의 징검다리를 건너 올 동안 붉은 잎 떨구며 계절을 노래했겠지. 윙윙대는 높새의 몸부림과 모진 바람에도 눈 질끈 감은 채 연주하는 겨울 소나타. 하필 그래서 겨울나무였는지

어느 날은 바람의 현으로 눈물을 쏟는 겨울 악기처럼 어느 날은 또 기도하는 손마디처럼 아련해 보였다. 겨울 강 언덕에서 수많은 가지를 풀어헤치고 끝없는 허공을 저어가던 구슬픈 영혼. 오랜 날 추위를 견딘 걸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그래서 싹을 틔우고 그늘을 만들면서 숲을 일구어 냈다. 그렇게 온 산골짜기와 울멍줄멍 뻗어나간 산맥을 에워싸고 지킬 수 있었노라고 하면서.

높새 우는 바람골짜기는 얼마나 추웠을까. 겨울나무라 해도 동무가 있으면 괜찮았을 거다. 벌판에 유배된 채 허구한 날 떨고 있으나 그게 새봄맞이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다. 나무가 밀어낸 것은 붉은 꽃잎과 연둣빛 새순뿐이 아니었다. 끝내 밀려난 것은 겨울이되 엉망진창 부르튼 손에서 겨우내 버틸 과정을 돌아본다. 넘어지지 않으려 힘을 주다 보니 바람모지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던 거다.

가끔 지나온 날이 떠오르기도 했겠지. 초록과 단풍은 아름다웠지만 겨울이면 그늘에서 쉬던 자취는 찾아볼 수가 없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꿈꾸는 과정일지언정 바람에 떨고 있는 모습은 안쓰럽기만 했다. 뼛속 마디마디 얼어붙은 한기를 져 내리며 눈물을 쏟아냈겠지. 아무리 깃 여며도 몰아칠 바람이 있다는 것을 빈손으로 하늘 떠받치는 나무에게서 보는 것이다.

물오르는 봄, 가지마다 수액이 흘러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을까. 겨우내 쟁여 둔 냉기가 얼음 풀린 땅 속 기운과 맞물려 마중물로 솟아났다지. 잎 하나 없는 줄기는 앙상했으나 썰렁한 벌판에서 견디는 모습이 경이롭다. 계절의 징검다리에서 켜 대는 앙상한 선율이 빈 메아리로 돌아올 때마다 겨울은 둬 발짝 물러나고 봄 뿌리는 점점 더 실해진다. 겨울이라 해도 슬프지만은 않은 이유다.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겨울을 떠받치고 우주를 버틴다. 고독한 하늘지기를 보고 있으면 조금씩 다가오는 봄 기척이 들리곤 했는데 괜히 속을 끓였다. 까칠한 손으로라도 움켜 쥘 봄이 있는 것 또한 소망이다. 얼어붙은 땅에서 그보다 차가운 몸으로 견디는 따스한 심장을 보니 외로워도 참을 수 있어야겠다.

춥고 매서운 겨울일수록 봄이 더 따스하고 새싹은 푸르다는 것 또한 마흔 아홉 번의 겨울을 보낸 뒤 깨우친 사실이었다. 바람을 꿈꾸는 겨울나무처럼 살면 운명도 잠잠하겠지. 추워질 때마다 나는 또 새벽놀 같은 안개비를 보았고 눅눅한 가슴 한켠에 꽃씨를 묻었다. 나무가 두 팔 아름 껴안은 것은 눈물보다 진한 소망이었다. 잎과 봉오리를 새기면서 봄을 꿈꾸는 겨울나무에게 추운 만큼 따스한 메시지를 보낸다. 12월도 그믐께 침묵을 클릭하는 시간의 정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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