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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둠벙의 개구리밥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며칠 전까지도 초록색 융단처럼 덮여 있던 게 비가 쏟아지고는 몇 개만 둥둥 떠다닐 뿐 흔적이 없다. 이번 비가 아니었으면 작물이 대부분 타죽었을 거라고 하니 그야말로 단비가 아닐 수 없다. 그 결과 풍경은 간 곳 없이 되었어도 딱히 서운하지는 않다. 해갈이 되려면 또 아직 멀었으나 볕이 쨍쨍한 속에서 스케치했던 풍경은 꿈속에서도 보일 듯 선명했으니까.

스무날 전 다리께서 본 시냇가는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었다. 가뭄으로 물 걱정이 심각할 때 개구리밥이 파랗게 어우러진 둠벙을 본 것이다. 풀은 마르고 둔덕의 미루나무까지 시들어 가던 중 움푹 들어간 자리에 물이 남아 있었는지 수많은 개구리밥이 가시연밥과 함께 어우러졌다. 바람에 하늘하늘 이파리는 춤을 추듯 예쁘고 사뿐사뿐 가볍게 스텝을 밟는 듯하다.

둥글게 윤곽을 뜬 뒤 개구리밥과 가시연밥을 새기고 가장귀에 창포와 미나리를 수놓아 걸쳐 두었을까. 혹은 커다란 세숫대야를 파묻은 뒤 물 가득 받아 개구리밥을 뿌리고 드문드문 가시연밥을 띄워놓은 것도 같다. 그렇더라도 누군가 파 놓은 게 아닌 바닥이 깊은 곳에 물이 고이면서 바글바글해진 게 가뭄 속에서도 청량한 느낌이다.

얼핏 양탄자에 수를 놓은 것 같아서 단지 초록이라고 하기는 그랬다. 개구리밥 하나 덜렁 떠 있을 때는 흔한 연두색이었으나 가시연밥이 고명으로 뿌려진 곳은 좀 더 녹색이다. 개구리밥이든 가시연밥이든 특별히 다를 건 없지만 미세하게 나타난 빛깔의 차이는 신비로울 때가 있다. 물이라야 작은 옹달샘 정도에 걸쭉하기는 해도 그래서 더 파랗게 드러났다. 더러운 물은 혼탁한 세상이 될 수 있고 지혜롭게 극복하다 보면 개구리밥 등의 물풀처럼 산뜻한 빛깔의 연출도 가능하다.

논이든 냇가에서든 둥둥 떠가기만 했는데 뜻밖에 생기가 돌고 반들반들 초록은 눈이 부시다. 가뭄에 찌든 물을 정화시키기 위해 무성하게 올라온 거라면 더러운 데서 자라는 것도 필연이다. 연꽃이나 창포 등 물가의 식물도 대부분 그런 역할이었던 것처럼.

후렴같이 따라붙는 '밥'도 친근한 뉘앙스다. 내남없이 어렵게 살던 시절에도 6월이면 연못은 초록색 이엉을 해 달고, 저만치서 보면 초록색 나무 대문처럼 환상적이었는데 가난한 마음은 오히려 절박했던 것일까. 주로 개구리가 사는 곳에 많고 올챙이가 먹는 풀이라서 개구리밥인지는 모르되 널찍한 가시연밥 위에 앉은 개구리는 자주 보았다. 가끔 연꽃보다 작은 가시연꽃이 보이고 자잘한 초록 이파리가 흩어져 있었다면 그렇게 불렀을 법하다.

개구리밥 몇 개를 쳐들어 보니 가늘고 약한 뿌리. 물 위에 사는 식물은 원래 그렇지만 물도 귀한 속에서 어깨를 겯고 있는 게 도담도담 예쁘게 사는 서민들 같다. 가끔 부평초 같은 인생이라고 하는 것도 실낱같은 뿌리 때문이나 물 위에 뜬 채로도 땀땀 고았으니 약하다고만 볼 수 없다. 살면서 가뭄이 드는 것처럼 어려울 때도 수많은 잎사귀를 겹겹 꿰매고 잇대놓은 것 같은 모습이 절망적이지는 않다.

가뭄이 들거나 말거나 저희들만 산뜻한 초록을 껴안고 깨가 쏟아지는 것 같은데 점점 붉은 가시연꽃과 어우러진 풍경이야말로 먼지만 풀풀 나는 속에서의 판타지였다. 참 아름다운 정경이래도 오랜 가뭄을 생각하면 신경이 쓰이고 부담스러웠는데 뒤늦게 비가 와서 정말 한시름 놓았다. 풍경은 사라졌으나 여느 때보다 가뭄에 더욱 푸르러지고 훨씬 예쁘게 비치는 것도 특이했다. 물 걱정에 시달리던 기억은 아찔한 기분이었으나 절박한 속에서도 아름다운 풍경이 나온다. 소망도 가끔 엉뚱한 데서 찾게 될 테니 어떤 경우든 그야말로 소망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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