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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천국의 문 앞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나무의 가지에는 죽어서 온 영혼들이 적어 낸 온갖 사연이 매달려 있다. 이제 막 도착한 영혼들은 모두 자기 이야기를 써서 걸어놓은 뒤 천사와 함께 나무 둘레를 돌며 다른 사람이 적어 놓은 얘기를 읽게 된다.

바로 그때 천사는 여기 적힌 사람들의 생애 중 하나를 고르면 그대로 살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내놓는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니 누구라도 솔깃한 일인데 어떤 영혼이든 뜻밖에 자기가 살아온 삶을 다시 적어낸다고 했다. 나무에 적혀 있는 가지가지 사연을 보고 나면 자기는 그래도 행복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우화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자기 인생이 그나마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견딜 만했다는 의미다. 아니 모두가 힘들었을 텐데 능력만큼 주어지면서 그나마 수월했을 것이다.

요컨대 하루 종일 뛰고 달려야 되는 일이라면 말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지만 나무를 타고 오르는 일은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반면 말에게는 형벌 같은 시련도 원숭이라면 땅 짚고 헤엄치는 식으로 수월할 수 있겠지. 어려움은 천태만상이고 시련 또한 적성에 맞춰 온다. 저마다 살아온 삶은 스스로에게 아주 적합했을 테니 불평할 게 아니다.

우화에 나오는 대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 이전의 삶을 재차 살아갈 모습이 궁금하다. 힘들 때는 "괜히 이 길을 선택한 거야. 내가 어리석었지"라고 탄식할 것이다. 한번쯤은 다른 사람의 삶도 괜찮았는데 라고 탄식할지언정 뒤미처 "아니야, 내가 다시금 원한 길 이었어"라고 스스로를 달래지 않을까.

삶의 시나리오는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오로지 자기 몫이었다고 하면서. 두 번째 삶이라 더 이력이 나고 수월했다면 다시 태어나서 짊어진 이듬의 삶으로서는 충분히 가치 있는 날들이었을 테니까.

처음 적응할 때는 당연히 힘들다. 그러다가 단련이 되는 것은 서로가 임의로워진 때문이다. 가족이나 주변 인물들 또한 오랜 날 길들여진 까닭에 이렇다 할 잡음은 없다. 우화에서는 또 죽은 다음에 다시 살게 될 경우를 전제로 했지만 겪어 보면 친구든 이웃이든 별반 다르지 않다.

저 사람은 아무런 걱정 없이 살겠지 라고 생각했다가 내막을 알고 난 뒤 당혹스러워 한 일도 많았다. 그 사람 역시 나를 부러워했다가 속내를 파악한 뒤에 실망할 거라면 사는 건 모두 엇비슷하다.

게다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선택한 길이다. 첫 번째는 또 원치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두 번째는 100% 자기 선택이었다. 지금까지의 삶을 거부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여전히 같은 길을 택한 것은 곧 자기 적성이었다는 뜻. 남들 살아온 내력을 보면서 그나마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이면에는 자기 인생은 자기 안목이었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루하다고 생각해 왔을 삶을 벗어나 전혀 다른 길을 택할 수 있었으련만 그렇게 되면 더욱 힘들어졌을 거라는 뜻이다.

천국 문 앞에 있던 사람들이 이전대로 살고 싶어 한 것은 죽은 뒤라서 가능했다. 나뭇가지 사연도 사연이지만 그래도 이전의 삶이 좋았다고 깨우친 결과다. 살 동안에는 힘들었으나 지나고 나니 내가 걸어온 길이 순탄했다는 깨우침. 살아서는 전혀 몰랐던 일인데 죽고 나니 내 살아온 삶이 좋았다는 걸 알게 되고 그 결과 다시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결심까지 굳히게 됐다.

그렇더라도 참 어려운 삶이다. 거미줄같이 얽힌 관계 또한 우주보다 복잡한 첩첩산중이지만 골짝에도 꽃은 핀다. 가끔은 새가 울기도 하는 것처럼 겹겹 둘러싸인 밀림 속 같은 삶에도 무지개가 걸린다.

지금은 힘들지만 다시 태어날 때는 이 삶이 최고였다고 회상하게 될 테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시 태어나도 또 한 번 걸어가게 될 삶을 답파하면서 삶의 기틀을 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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