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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연사연구가. 칼럼니스트

우리의 민담에는 총각 원혼인 몽달귀신과 처녀귀신인 손각시가 많이 등장한다. 장가나 시집을 가지 못하고 죽은 총각 처녀들의 원혼이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승에서 생자에게 붙어 한을 푼다는 얘기다.

매월당 김시습의 소설 금오신화 '만복사 저포기'에는 양생(梁生)이라는 선비가 주인공이다. 양생은 남원 만복사에서 수학하던 중 아름다운 처녀귀신을 만나 꿈같은 순간을 보낸다. 저승과 현생을 오고가며 출몰하는 이 처녀귀신은 양생을 지극히 사랑하여 평생 배필이 될 것을 다짐했다.

-(전략)...오늘의 이 가연을 어찌 천행이라 이르지 않겠습니까· 낭군께서 만일 소첩을 버리지 않으신다면 종생토록 당신을 받들겠습니다. 만일 당신께서 저를 버리신다면 저는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사라지겠습니다' 양생이 한편 놀랍고 또 한편 고마운 생각이 들어서 '그대의 사랑을 내 어찌 저버릴 수 있겠소·...(하략)-"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원한을 푼 처녀귀신은 저승으로 떠나야 했고, 양생은 행복했던 며칠간의 추억을 간직한 채 다음 생을 기약했다. 이 소설은 생과 사를 넘다드는 4백년전 원조 격 판타지다.

명기 황진이의 설화에도 총각귀신이 등장한다. 황진이를 짝 사랑하다 죽은 총각의 상여가 황진이의 집 앞을 지나갈 때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황진이가 속적삼을 얹어주니 상여가 지나갈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 민속학자였던 이능화의 글을 보면 원귀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을 손각시로 봤다. 남자와 한 번도 잠자리를 못하고 죽은 처녀귀신을 지칭한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처녀가 죽으면 손각시가 될까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딸이 시집가기 전에 반드시 무당을 불러 여탐굿을 했다.

밀양에 전해지는 '아랑 설화'에는 생자와 사자 간에 애정은 없다. 억울하게 죽은 사대부의 딸이 원귀가 되어 신임 부사에게 나타나 복수 한다는 얘기다. 이 설화는 남자와 결합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된 손각시의 얘기와는 패턴이 틀리다.

옛날 고을 사또들은 비가 오지 않아 흉년이 들면 호들갑을 떨었다. '내가 부덕한 것인가. 왜 하늘이 노하여 비를 내리지 않는 것인가...'. 사또는 형방에게 과년한 딸을 출가시키지 않은 관내 부모들을 모조리 관가로 잡아드리도록 명령한다.

사또는 이들을 형틀에 묶게 하고 큰 소리로 책망하기 시작한다. 매에 견디지 못하는 백성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그냥 죽을죄를 지었다'고만 답했다.

"네가 과년한 자식을 두고도 시집을 보내지 않으니 음양(陰陽)의 도를 어긴 것이다. 그러니 하늘마저 진노하여 비를 내리지 않는 것이다. 하루빨리 출가시키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곤장을 맞고 돌아 온 부모들은 서둘러 혼처를 찾거나 이미 혼기를 놓친 처녀를 둔 집에서는 궁여지책으로 보쌈까지 생각해야 했다. 조선시대 어린 자녀에게 미리 혼처를 정해주는 조혼 풍속이 '음양의 도'를 어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 보고서를 보면, 여성 독신율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혼자 사는 여성이 많아지면서 2025년에 50세가 되는 여성 10명 중 1명은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또 지난해는 결혼한 부부가 42년 만에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옛날 같으면 임금과 관아 사또들이 분노할 사안이다.

혼인하지 않는 남녀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재앙이다. 동네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국가와 사회가 모든 지혜를 동원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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