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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부관참시'는 제일 끔찍한 과거지향의 형벌이었다. 죽은 사람의 시신을 꺼내 참시하는 것이다. 조선왕조는 대역죄를 지었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 이 형벌을 단행했다. 연산군은 어머니 윤씨의 사사에 연루됐다고 하여 죽은 한명회의 목을 잘라 저자거리에 효시하는 끔찍한 형벌을 시행했다. 죽은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무오사화의 발단이 되자 연산군은 또 그의 시신을 꺼내 참시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한국처럼 과거에 매달려 살아온 역사를 가진 나라도 없을 것 같다. 미래를 여는데 열정을 쏟아야 함에도 과거의 틀에 항상 갇혀 일어설 시기를 잃어왔다. 조선의 과거 지향은 인재를 선발하는 과정에서도 엿 볼 수 있다. 응시자들은 시험지 상단에 아버지부터 5대조 까지 이름을 적어야 했다. 행여 선조가운데 문제가 있으면 급제의 영예를 차지하지 못했다. 아무리 훌륭한 성적을 얻었어도 낙방되었다.

당쟁 승리자들은 자당의 자제에게만 급제의 영광을 주고 몰락한 당의 후예들이 출사하는 것을 막았다. 많은 인재들이 한을 품고 낙향하거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죽었다.

사회개혁을 부르짖었던 허균은 소외 된 인재들과 교우하며 개혁의 선봉에 서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다. 과거 지향의 낡은 틀을 가지고서는 나라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허균의 저항은 찻잔의 폭풍에 불과했다. 조선은 그를 혹세무민의 이단아로 몰아 죽이고 만다.

조선의 양심적인 세력이 낙향하여 산간에 숨은 것은 바로 정치보복을 피하기 위해서 였다. 공연히 트집을 잡혀 모함을 당하거나 비판을 받는다면 목숨마저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시골에 눌러 앉아 시와 술을 벗함으로 즐거움으로 살았다.

보은은 당대 지식인들이 사화를 피해 숨어산 곳이다. 보은 마로는 한때 최수성이 낙향 한 곳인데 인근에 지식인들이 몰려 거대한 유림 산맥을 형성한다. 당대 최고의 학자이면서 훌륭한 인품을 가졌던 대곡(大谷) 성운을 조정이 잃은 것은 큰 손실이었다.

추상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던 조헌이 옥천 밤티에 숨은 것도 당쟁의 격화 때문이었다. 계속 조정에 있다가는 불같은 성질로 생명을 부지할 수 없었다. 보은 현감 때 눈 여겨 두었던 밤티는 환난을 피하기 좋은 곳이었다. 조헌이 은거하자 이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구름 같았다.

조선 선조시기 당쟁이 한창 격화할 당시 백사 이항복은 조정에서 중신들에게 재미난 조크를 한다. '내가 거리에서 보니 중과 환관이 싸움을 하고 있습디다. 그런데 중은 환관의 거시기를 잡고 환간은 중의 머리채를 잡고 있었오' 그때 중신들은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백사의 조크는 뼈 있는 말이었다. 동인 서인들이 하찮은 일로 다투고 있는 것을 꼬집은 것이었다.

지금 온통 나라가 과거지향의 와중에 빠진 인상이다. 전 정부, 전전정부, 여야 간 물고 물리는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고소 고발이 난무하고 서로가 부관참시라고 주장하며 국감현장의 행태는 이전투구 양상이다.

청와대 비서실장 까지 피로감이 역력한 세월호 재수사의 대오에 합류했다.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인데 이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국민들의 생각을 읽지 못하는 정부, 촛불을 민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정부의 지금 행로가 진정 옳은 것인가.

지금 한국의 미래 기상도는 매우 흐리다. 제일 우선해야 할 안보도 불안하다. 많은 기업인들이 공장을 다른 나라로 이전하거나 사업을 포기하겠다고 아우성이다. 한국이 싫다고 이민을 가거나 외국으로 떠나가는 지식인들이 늘고 있다. 세계는 날고 있는데 우리는 국론분열로 네 편 내편 나뉘어 삿대질만 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목전에 두고 언제까지 부관참시 운운하는 과거지향의 역사에만 집착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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