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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04.21 17:39:52
  • 최종수정2021.04.21 17:45:44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세종대왕이 두 번에 걸친 행행(行幸) 역사가 있는 청주 초정약수터에 세계적인 '훈민정음탑'을 조형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미 이 제안에 앞장 선 나기정 전 청주시장이 수 만평의 부지를 기증하고, 신방웅 전 충북대 총장, 이융조 전 충북대교수 등 원로 재청 학계, 문화계 인사들이 동참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초정에서 한글창제 과업이 마무리 되어 반포되었다는 훈민정음 역사는 학계의 굳어진 학설이 되고 있다. 세종은 안질 치료를 목적으로 초정 행궁에 와서 2개월여 있었다. 일국의 왕이 지방 행궁에서 이렇게 많은 날을 지냈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 기간 동안 초정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왜 세종은 이렇게 많은 날짜를 초정행궁에서 떠나지 않은 것일까. 그리고 훗날 세조는 초정을 찾는 길에 특별히 속리산 복천암에 들려 부왕을 도와 한글창제에 조력한 신미대사를 만난 것일까. 조선왕조실록은 이런 해답을 숨겨 놓았다.

초정에서 훈민정음 창제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기록은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의 상소문이다. 최만리는 반대상소에서 '이번 청주 초수리 거둥 때 (…) 언문 같은 것은 국가의 급하고 꼭 기한에 미쳐야 할 일도 아닌데, 어찌 이것을 행재(行在)에서 급급하게 하시어 옥체 조섭을 번거롭게 만드시나이까?'라고 했다. 바로 이 상소문 안에 세종의 초정행궁 체재의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이다.

세종은 한양 정궁으로 신미대사를 불러올리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중신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중이 궁을 출입한다고 성토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세종은 총신들을 시켜 안질치료에 효험이 있다는 초정행행의 명분을 얻으려고 묘안을 짰다.

처음에는 지방을 행차하면 백성들이 괴롭다고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임금 편인 비서실장도승지가 충청도는 풍년이 들어 강행해야 한다고 주청하자 못이기는 척 허락했다. 세종의 초정 나들이는 바로 한글 창제를 마무리하기 위한 일대 비밀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한양에서부터 초정리까지의 거리는 280리. 세종대왕은 한양~죽산~진천~초정의 노선을 5일에 걸쳐 당도했다. 어가는 단출하였으며 첫 날은 100여리나 나갔다는 기록이 전한다. 사흘 째 되는 날(3월 1일)에는 속도가 상당히 떨어졌다. 숙영지인 충청도 진천에 도착했을 때는 모두 기진맥진해 있었다(3박). 나흘째 되는 3월 2일, 세종 일행은 다시 60여 리를 더 내려가 드디어 초정에 도착했다. 왕, 왕비, 세자는 물론 수행한 신료들도 모두 고단해 바로 취침에 들어갔다고 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를 위한 세종의 초정행차 역사는 이같이 힘든 노정이었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인 신미대사에게 승려로서는 전무후무한 시호를 내리라고 유언한다. 혜각존자(慧覺尊者) 앞에 '나라와 세상을 이롭게 하였다'는 우국이세(祐國利世)란 칭호를 붙이라고 한 것이다.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들 문종은 부왕의 유명을 실천했다.

원각선종석보(圓覺禪宗釋譜)라는 불서 말미에는 1438년 세종 20년 명(明) 정통(正統) 3년 천불사(天佛寺)에서 정음으로 간행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시기는 한글창제 반포 5년 전의 일이다. 이 불서를 보아도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을 창제한 주역은 신미대사가 분명한 것이다. 이 불서의 진위에 관한 논란도 있지만 보다 연구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한글은 이제 세계 언어학자들로 부터 가장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글을 문자로 쓰는 나라가 늘고 있다. 한글창제가 마무리 된 초정에 '훈민정음 탑'이 세워져 세계인들이 많이 찾는 미래를 기대해 본다. 이 대업이 이 시대 우리들이 해야 할 '국격을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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