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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철새'라는 용어는 이익을 좇아 당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정치인을 지칭하기도 한다. 요즈음 여·야당이 총선을 앞두고 지역 후보를 내면서 일부 탈락한 정치인들이 당적을 옮기고 있다. 오로지 공천을 받기 위해 수십년 쌓아온 정치적 신념이나 동지적 유대도 팽개친다.

철새 정치인은 요즈음만의 풍속도는 아니다. 조선 유교사회에서도 사색당파의 대립이 첨예했던 시기, 철새 정치인이 많았다. 선비가 지녀야 할 대쪽 같은 신념이나 절개도 권력을 위해서는 헌신짝처럼 버렸다.

지금은 공천을 위해 당적을 바꾸는 철새들이지만 옛날에는 상대 당을 역적으로 몰아 몰락시키는 극단적인 모함행위 까지 벌였다. 사화나 고변등 조선 중기 피의 숙청사를 들여다보면 모두 권력투쟁의 산물이다.

경종(景宗. 재위 1720~1724)대 정권을 잡은 소론은 노론을 완전히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사헌을 거쳐 형조판서가 된 김일경이 앞장섰다. 그는 노론의 인물 중 목호룡이란 사람을 매수했다. 목호룡은 남인 천얼 출신으로 청능군(靑陵君)의 집안 노비였으나, 풍수를 배워 연잉군 사친(私親)의 장지를 잡아주고 노비에서 양인이 되었다.

이후에 궁궐의 토지와 곡식을 관리하면서 부호가 되었다. 평소 시를 잘 지어 노론 중진들과 친밀하게 지내며 연잉군(후에 영조)을 보호하는 편이었다.

소론의 사주를 받은 후 변심한 그는 1722년 노론을 이탈, 소론으로 당적을 바꾼다. 그는 자신이 노론계의 중진들과 모의해 왕을 시해하고 병조판서를 지낸 이이명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를 꾸몄다고 모함했다. 이게 바로 '목호룡의 고변사건'이다.

이 말을 들은 경종은 크게 노하여 노론 인사들을 모두 잡아들이라고 했다. 잡혀온 사람들은 유배 중인 노론 4대신과 권속 및 추종자들이었다.

동궁에서 매를 훈련시켰던 백망(白望.1627∼1722)은 소론과 남인이 왕세자를 모함하려고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당시 신문을 담당하고 있던 남인들은 이를 묵살해버렸다. 백망의 집안에서 갑주와 칼이 발견 되어 거열형에 처해졌다.

영조 때 유명한 암행어사 박문수는 본래 당적이 소론이었다. 소론의 이념과 당론을 가장 추종하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소론의 선봉 이인좌가 영조에게 반기를 들자 왕은 박문수를 시켜 이들의 진압하라고 명한다.

박문수는 군사들을 이끌고 출전하여 자신과 뜻을 같이 한 이인좌 무리를 소탕했다. 그는 이인좌의 난을 토벌한 후에 공신 책봉의 예에 따라 녹훈되었으며, 영성군(靈城君)에 봉작되었으나 후대에도 소론의 비난을 들어야 했다.

소위 '철새정치인'은 대한민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국회의원들은 당을 이적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러나 선거철만 되면 한인사회에 나타나 표를 달라고 구걸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재미교포사회에서는 이들을 '철새'라고 호칭한다.

이들 정치인들은 선거자금의 모금과 표에만 관심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미국의 선거일인 11월 첫째 주 화요일 전에 열심히 한인사회에 나타나다가 선거가 끝난 12월부터는 발길을 끊는다는 것이다.

여야가 공천후유증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여당보다는 야당이 심하며 벌써 많은 현역의원들이 탈당, 새로운 정치 연합을 만들고 있다. 야당의 내홍은 공천 심사과정의 투명문제와 비명 친명간의 감정적 대립으로 격화되고 있다.

금강하구둑에는 겨울철 철새 무리가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탐조여행은 즐겁지만 자기 이익만을 위해 철새가 되는 정치인들은 아무래도 비호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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