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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가인 송강 정철은 유학을 공부했으면서 산사(山寺)를 자주 찾았다. 풍류로 생을 산 송강이 절을 찾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세상의 번뇌, 번잡하고 혼탁한 세태를 잊기 위함이었을까. 송강의 시 가운데 '산사야음(山寺夜吟)'은 그 중 백미로 손꼽힌다.

우수수 낙엽 지는 소리에 / 가랑비라고 생각했네 / 스님 불러 문을 나가 보게 했더니 / 달이 시내 남쪽 나무에 걸려있다네 (蕭蕭落木聲 錯認爲疎雨 呼僧出門看 月卦溪南樹)

다산 정약용은 차를 좋아했던 초의선사와 친했다. 나이가 25년 아래이면서도 다산은 강진 유배시절 망년지교로 초의와 마주 앉아 선문답을 들으며 차를 즐겼다. 유학자 다산도 어느새 불가의 경지에 들어선다.

다산은 이보다 앞서 백련사에 들렀다가 나이가 10년 아래인 혜장과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었다. 강진으로 유배 온 지 4년 뒤 일이었다. 일설에는 다산이 백련사 주변에 야생차가 많이 자라는 것을 보고 혜장 등 승려들에게 차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이때 다산과 혜장은 시주(詩酒)로도 친했다. 그러나 곡차를 좋아한 혜장이 40세에 술 때문에 입적하자 다산이 이례적으로 승려에 대한 비문을 지었다고 한다. (차와 문화 2007년 여름호)

충남 예산 수덕사 인근 추사 고택 뒤에는 화암사라는 절이 있다. 이미 고려시대부터 향화가 올려져온 사찰이었는데 추사 집안에서 원찰로 삼아 관리해 온 곳이다.

어린 시절 추사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화암사를 드나들었다. 추사가 성장하면서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추사가 제주도로 귀양을 가던 이듬해 회암사가 중창되었다.

사찰에서는 주인인 추사의 글씨로 현판을 달고 싶어 했다. 제주도로 사람을 보내 현판을 지어달라고 했다. 귀양지에서 시름에 잠겨 살던 추사는 현판 이름을 달아준다. 어떤 이름을 지어 보냈을까.

추사는 그 이름을 '시경루(詩境樓)'라고 지었다. 자신이 중국에서 스승 옹방강 선생으로부터 얻어 온 송나라 육우의 친필 '시경(詩境)'을 화암사 암벽에 새긴 추억을 떠올린 때문인가.

그리고는 글씨 맨 오른쪽 상단에 의미심장한 두인(頭印)을 거꾸로 찍었다. 도장은 '낙화수면개문장(洛花水面皆文章)'으로 '물 위에 꽃이 떨어지니 모두가 시로다'라는 절구를 인용한 것이다. 추사가 존경했던 원나라 시인 조맹견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시경루' 글씨는 추사의 예서를 대표하는 최고의 품격을 지녔다. 가늘면서 힘이 있고 예기가 넘친다. 서예를 하는 이들이 한번은 꼭 친견하고 싶은 유묵이었다. 수덕사 성보박물관에는 이 글씨를 모각한 현판이 남아있다.

최근에 추사가 쓴 시경루 진묵이 발견되어 필자가 고증했다. 아직도 진묵을 찾은 사연과 감동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날 산사(山寺)는 문인들보다는 정치인들이 찾는 피안으로 몫을 한다. 혼탁한 정치판에서 몸과 마음의 쉼터를 찾기 위함인가. 역대 많은 정치인들이 전국의 유명 사암을 찾았다.

잠행을 이어오던 나경원 전 의원이 지난주 천태종 본산 단양 구인사를 찾아 총무원장 무원 스님과 담소를 나눈 사진이 언론에 보도됐다. 무원스님은 '무소의 뿔처럼 고고하게 부처님 진리를 새겨 고요히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면 가야 할 길이 보일 것'이라고 법어를 주었다고 한다.

구인사는 관음을 주존으로 모시며 인(仁)을 찾는 도량이다. 오늘날 정치의 큰 목적도 결국 '인'을 구하는 데 있지 않을까. 폭풍우 속에 들어선 나 전 의원이 깨달음을 얻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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