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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10.23 14:22:42
  • 최종수정2024.10.23 14:22:42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필자가 태어나기 전 부친은 시골집을 지으면서 양지바른 담장 옆에 감나무를 심으셨다. 겨울철 할머니에게 홍시를 따 드리려고 한 것이다. 어린 시절 감나무와 같이 자란 필자는 감이 열리기 전 할머니 돌아가시고 말았다.

부친은 작은 감나무에서 힘겹게 열리는 감을 볼 때는 할머니에게 감을 드리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우리 가족이 고향을 떠나자 감나무는 시들시들해졌다고 한다. 훗날 성장하여 살던 집을 찾았는데 감나무는 사라지고 없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식물도 주인을 잃으면 생명을 다하는 것인가.

가을철 먹게 되는 감을 옛 날에는 효시(孝枾)라고 했다. 몸이 약한 노인들이 먹으면 기력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과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 보면, 홍시는 갈증을 멈추게 하고, 심열을 치료하며, 주독(酒毒)과 열독(熱毒)을 풀어 주어 위장의 열을 내리고 입이 마르는 것을 낫게 한다고 되어 있다. 또 노인들의 잦은 질병인 토혈(吐血)을 멈추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효자가 많이 난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감나무를 심었다. 영동이 효촌으로 지금도 집집마다 감나무가 많은 것은 이런 전통을 알려준다.

교과서에 실린 조선 가객 반인로의 '조홍시가(早紅枾歌)'는 감이 익어가는 계절 봉양할 부모가 없어 슬픈 자식의 마음을 나타낸 효 노래가 아닌가.

'반중 조홍감이 고아도 보이나다 / 유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 품어가 반길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박인로가 어느 날 한음 이덕형을 찾아갔다. 그런데 한음이 홍시 감을 접대로 내어놓자 그만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노래를 부른 것이다.

여기서 '유자'의 고사 는 중국 후한(後漢) 시대 육적(陸績)에서 유래한다. 그가 여섯 살 때 원술(袁術)을 찾아가서 차려 내온 귤에서 세 개를 옷 속에 품었다가, 하직 인사를 할 때 그만 땅에 떨어뜨렸다. 원술이 이상히 여겨 물으니, 돌아가 어머니에게 드리려 하였다고 대답한 옛일에서 연유된 말이다.

건시는 조선 국왕이 외국에 보내는 선물로도 쓰여 졌다. 세종실록에는 대왕이 대마도(對馬島)의 종정성(宗貞盛)에게 보내는 하사품에 건시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나온다. 인조실록에는 금나라에 세폐(歲幣) 진상품에 건시가 들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민간에서 건시는 연하 선물로 흔히 주고받았으며, 특히 혼례나 상례 때 부조로 많이 이용되었다. 식품 영양면에서도 우리나라 곶감은 노화예방, 피로해소, 면역력 유지뿐만 아니라 기억력 인지능력, 학습능력 향상 등 두뇌활동에 도움을 주어 인기가 높다.

가을철 영동을 여행하면 마을마다 빨간 홍시가 익어가는 모습을 본다. 승용차편으로 한천팔경을 돌아 심천강, 양강 도로를 달리다보면 농촌의 감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이를 카메라에 담아 지인들에게 보내주면 모두 좋아한다.

올해는 영동 상급 감 생산량이 전년대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어 농민들의 걱정이 앞서고 있다는 소식이다. 7~9월 극심한 폭염과 가뭄 때문이라고 한다.

일부 농가에서는 여름철 강한 햇빛을 오래 받아 일소 피해까지 발생했다. 부모 혹은 은사에게 보내는 선물을 품질 좋은 영동감으로 한다면 효를 실천하는 길이자 고향 농민들을 돕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아닐까 생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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