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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6.07 16:05:47
  • 최종수정2023.06.07 16:05:47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선조 임금이 의주에 피난했을 때 왜군이 평양성을 점령하자 조선의 목숨은 경각에 달려있었다. 이제 피신 할 곳은 만주밖엔 없다. 그런데 하늘이 도운 것인가. 명나라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명군은 압록강을 건너자마자 평양성을 공격하여 큰 피해를 입었다. 전의(戰意)가 앞서 일본군을 과소평가 한 것이다.

그 다음 추가로 온 군대는 이여송의 4만 대군이었다. 의기양양한 이여송은 평양성을 포위했다. 그런데 군사들의 대오에 이상한 무기가 발견 됐다. 무기가 성을 향하더니 엄청난 소리와 함께 불을 뿜었다. 포신을 날아간 포탄은 단숨에 평양성 누각을 박살냈다. 소총에 의존하여 전투마다 승리한 왜군은 경악한다.

평양성 전투에 나온 무기는 대포 불랑기(佛朗機)였다. 왜군은 큰 타격을 입는다. 명나라가 포르투갈에서 수입한 최신 무기였다. 조선 중기에 그려진 평양성 탈환도를 보면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아무리 명나라군의 무용을 그렸다고는 하나 몇 몇 군사들이 몰려 구경만하는 것이다. 이 전투에도 조선군은 도원수 김명원을 비롯하여 휴정·유정의 승군도 합세하였다.

그런데 조선 군사들은 성안을 향해 이상한 불화살을 날려 보냈다. 이 것이 바로 신기전(神機箭)이었다. 이 무기는 세계 최고(最古)의 로켓으로 세종 때 만들어진 것이다. 신기전은 소, 중, 대, 산화신기전 등 네 종류로 나뉜다. 비행 거리는 200~450m이며 소,중 신기전은 100여 발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다. 특히 산화신기전은 세계 최초의 2단 로켓으로 철가루를 사방에 흩 뿌려 적지를 불태우는 가공할 위력을 지녔다.

블랑기와 신기전에 놀란 왜군은 조총으로 평양성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여송은 왜군에게 퇴로를 열어주기로 했다. 왜장 고니시는 원군도 오지 않자 밤중에 남은 군사를 데리고 서울로 후퇴했다. 조선은 7개월 만에 평양성을 탈환하게 되었다.

40년 전 언론사에 있던 필자는 한 젊은 역사학도의 방문을 받는다. 충주출신으로 세종 때 신기전을 연구한다는 청년이었다. 그는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원이 되고 싶어 했다.

그로부터 10년 정도 지난 후 그가 또 신문사에 연락해 왔다. 미국에 가서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나사(NASA)에서 근무하다 돌아왔다는 것이다. 미항공우주국에 근무했으니 그는 로켓 전문가가 된 것이다. 그는 고향 충북에서 교수가 되길 희망했다.

필자는 모 대학 총장과 친밀하게 지낸 관계로 추천을 했다. 그런데 그가 S대 출신이 아니라서 인사위원들이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근무한 인재를 대학에서 이처럼 홀대 할 수 있는가.

한국 대학사회 학연 중시의 관행이 그를 잡지 못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수년 후 나는 대전에서 그가 한국 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으로 발탁됐음을 알았다.

그리고서는 수년 시간이 흘렀다. 그는 항공우주연구원장이 되어 나로 우주센터에서 누리호를 우주에 쏴 올리는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대한민국 우주개발의 초석을 다진 파이오니어가 되었다. 그가 대학교수가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대한민국을 위해 하늘이 도운 셈인가.

지금은 70대가 된 그의 이름은 채연석 박사(현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장)다. 그를 사람들은 지금도 '신기전 박사'라고 한다. 자랑스러운 충북인이 아닐 수 없다. 신문을 보니 지금도 무엇인가 도전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순신장군의 거북선을 고증하여 복원하고 있다고 한다.

우주개발은 이제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라고 한다. 정부 지원과는 별도로 기업이 새로운 우주 비즈니스를 주도하는 세상이 됐다. 한국의 우주항공산업도 이제 기업 간 경쟁 체제로 접어들었다. 한국항공우주시대를 연 퇴직한 영웅들이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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