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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6.21 16:39:00
  • 최종수정2023.06.21 16:39:00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보라빛 창포꽃이 만발한 산야. 창포 꽃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요즈음의 일이다. 오늘은 연중 최고의 가절이라는 단오날.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을 보면 이날을 맞아 자유롭게 냇가에 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여인들의 풍속화가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그네를 뛰는 양반가 사녀들, 아낙네들이 냇가에서 목욕하는 것을 몰래 훔쳐보는 선비, 조선 유교 사회 금기시 되었던 여인들의 일탈을 과감하게 담고 있다.

옛 여인들은 단오 날 삼단 같은 머릴 풀어 창포물에 감는 풍습이 있었다. 왜 하필 창포물이었을까. 창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으면 특유의 향기가 나쁜 귀신을 쫓고, 머리에 윤기가 난다고 생각했다. 또한 건강에 좋다고 믿어 창포 삶은 물을 마시기도 했다.

동의보감에 창포 사춘 쯤 되는 석창포라는 약초가 있다. 오래 먹으면 늙지 않고 신선(神仙)이 된다고 전해오는 약초다. 도가(道家)의 경전인 도장(道藏)에는 석창포를 먹고 신선이 된 사람의 애기가 여럿 나온다고 한다.

포박자(抱朴子)에는 '한중이라는 사람이 12년 동안 석창포 뿌리를 먹었는데 온몸에 털이 나고 겨울에 속옷만 입어도 춥지 않았으며 하루에 만 자가 넘는 글을 쓸 수 있었다' 라고 적혀 있다.

또 선신은서(仙神隱書)라는 책에도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석창포를 심은 화분을 책상에 두고 밤을 새워 책을 읽어도 등잔에서 나오는 연기를 다 빨아들이므로 눈이 피로하지 않다.'

또 '석창포 화분을 바깥에 두고 아침에 잎 끝에 맺힌 이슬로 눈을 씻으면 눈이 밝아져서 한낮에도 별을 볼 수 있다' 고 한다. 이러니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면 좋아진다는 속설이 생겼는지 모른다.

조선전기에 박은(아호釣隱. 朴誾 1479년~1504)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그는 시선 이백(李白)의 유명한 '석여춘부(惜餘春賦)'에 차운하여 청포시를 지었다. 높은 지위에도 냇가에 나가면 청포를 잘라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것이 그리 흉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물가의 난초를 얻어 허리춤에 매고(汀有蘭兮佩結) / 창포를 잘라서 허리에 띠로 맨다(石有蒲兮帶剪) / 천 길 깊은 연못을 굽어보노니(臨千尺之幽潭兮) / 봄을 보내는 나의 한이 이 못물보다 더 깊으리라 / 恨孰與之深淺 (읍취헌유고 제1권 / 부(賦)).

창포는 현재 멸종위기라고 한다. 외국산 아름다운 꽃들이 밀려들어와 한국의 산야와 들, 정원을 잠식한 때문인가. 현대시인 문인수는 우포늪에 나가 창포가 멸종단계임을 애석하게 여기면서 창포에 모인 아낙네들을 열거했다.

창포를 보았다 / 우포늪에 가서 창포를 보았다 / 창포는 이제 멸종 단계에 있다고 누가 말했다 / 그 말을 슬쩍 못들은 척 하며 / 풀들 사이에서 창포가 내다본다…/ 노리실댁/소래네/닥실네/봉산댁/새촌네/분네/개야미느미/꼭지/뒷모댁/부리티네/내동댁/흠실네/모금골댁/소득골네/갈 잿댁 우거진 한쪽에 들병이란 여자도 구경하고 있다…(하략)

단오절은 일년 중 가장 좋은 가절이다. 고전에서는 대부분 이날 천생배필을 얻는 날로 설정했다. 춘향이 광한루에서 이도령을 만나 일편단심 사랑을 시작한 것도 바로 단오날.

단가 '강상풍월'은 단오풍경을 예찬한 민요다. '강상에 둥둥 배를 띄워 술과 안주 많이 실어 강릉경포대로 구경 가자'는 소리다. 판소리를 시작하기 전 목을 푸는 단가라고 하지만 이름난 명창들도 곧잘 이 소리를 부른다.

단양 팔경 도담삼봉도 단오 때 강상풍월 풍류하기 좋은 경치가 아닌가. 관광객 유치를 위한 '도담 강상풍월'이란 노래도 하나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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