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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9.06 17:04:25
  • 최종수정2023.09.06 17:04:25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조선시대 '벽서(壁書)'라는 것이 있었다. 벽에 대자보를 붙여 임금을 비방하거나 특정인을 모함하는 표현방법이다. 상소라는 제도적 장치가 있었으나 이름을 밝히지 않는 벽서는 엄중하게 다스렸다.

명종 때 양재 벽서사건, 영조 때 나주 벽서사건은 가짜로 음모적 상황이 짙다. 자신들을 비난하는 세력을 모함하여 제거하기 위한 모함극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나뭇잎에다 꿀을 발라 벌레가 파먹게 하고 이를 임금에게 역모로 고변한 사건은 중종 때의 일이 아닌가. 정직한 선비들이 참화를 입었다.

가짜 뉴스를 만들어 파는 행태는 과거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조보(朝報)는 '기별'이라고도 불렸으며 지금의 소식지에 해당한다. 그러나 신문이 없던 시대 기별은 지금의 언론기능 일부를 담당했다.

우리말에 '오늘은 좋은 기별(소식)이 올라나'하는 말은 모두 여기서 유래 된 것이다. 조선 중종 연간에는 기별이 인기가 많아 서울의 육전 거리 상인들에게도 배포됐다고 한다.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선비들은 기별을 제작하여 생활하기도 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는 가짜 기별이 나돌아 관가가 골탕을 먹는 일도 있었다. 암행어사 박문수 일화에 나오는 '가짜어사 기별'은 드라마로도 제작이 되었다. 기별을 많이 팔리게 하기 위해 나라의 기밀이나 가짜 뉴스를 만들어 돌리기도 했다.

윤음(綸音)이란 '가짜뉴스'를 지칭한다. 포도청은 이 가짜 소문으로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정조가 즉위한 직후에는 '과거제도를 개선 한다' '관리가 뇌물을 받으면 사형에 처 한다' '양인도 옛글에 능통하면 가려 쓴다' '술은 망국의 폐가 있으니 절대 금 한다' 등의 소문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포도청이 수사에 나섰으나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지 못했다. 정조는 이를 진화하기 위해 사실이 아니라는 역 윤음을 내리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민심은 희대의 사기꾼 얘기에 열광하는 속성이 있는 모양이다. 한국의 민담설화 가운데서 단연 인기는 봉이 김선달이다. 춘향전, 심청전과 더불어 이 해학적 사기극은 지금도 회자된다.

미국에서도 코믹한 사기꾼 영화는 흥행한다는 공식이 있다. 청교도 사회라는 미국이 사기꾼 얘기에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이율배반이다.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은 세계적 미남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아 흥행에 성공했다.

가짜 뉴스가 오늘날처럼 많이 나도는 시대가 우리 현대사에 있었던가. 일부 반 언론적 인사들이 돈에 매수되어 기본 윤리를 팔고 있다. 마지막 양심의 보루라는 언론이 이렇게 정치에 편향적으로 이용되고 있으니 할 말을 잊게 한다. 사기 언론으로 입는 피해는 결국 국민들이다.

검찰은 옛 언론노조 위원장이 화천대유자산관리의 대주주인 김씨의 제안에 따라 '조작 인터뷰'를 진행하는 대가로 억대의 금품을 받아 가짜 뉴스를 퍼뜨린 혐의를 잡고 압수수색을 했다. 이날 둘의 조작된 대화가 담긴 음성 파일은 6개월 간 남아 있다가 대선 직전 인터넷 매체 인터뷰 기사로 보도됐다. 이 매체의 기사를 친 야당 성향의 제도권 매체들이 확인이나 반론 절차조차 없이 줄줄이 받아썼다고 한다.

특정 후보를 낙선 시킬 목적으로 사기 언론 대열에 앞장 선 것이다. '가짜 뉴스'는 언론의 정도에 위배되는 '현대판 벽서'가 아닌가. 이를 이용하고 조작하는 정치집단도 결국 국민들에게 외면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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